더 오래 살고자 하는 인류에게 암은 생명을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질환으로 꼽힌다. 국내에서도 위암·폐암·대장암 등은 주요 사망원인이다. 때문에 암에 걸렸더라도 이를 완치하거나 완치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치료성과를 거두기 위한 학계·의료계 연구와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그 결과 전 세계 항암 치료는 매순간 변화하면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최근 항암요법 패러다임은 ‘면역요법’으로 옮겨지고 있다. 체내 면역체계를 기반으로 한 면역요법은 암 치료 성과를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는다. 이미 암 치료제는 과거 1세대 세포독성항암제에서 2세대 표적항암제로 발전한 이후 현재 3세대 항암제로 불리는 ‘면역항암제’로 ‘진화’했다고 평가된다.
14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한양종합기술연구원(HIT) 6층 대강당에서 ‘통합암치료의 미래’를 주제로 개최된 2018 대한통합암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는 암 치료를 위한 국내외 통합의학 현주소가 확인됐다. 대한통합암학회는 현대의학과 한방·융합의학 등 통합의학을 근거중심 의학으로 발전시켜 암 환자 삶의 질을 높이고자 설립된 단체다. 이번 국제학술대회는 학회가 사단법인으로 인가된 후 마련된 첫 행사다.
대한통합암학회는 여러 해외 전문가 초청으로 이번 국제학술대회를 마련해 국내외 통합암치료에 대한 최신 지견을 다뤘다. 이번 행사에는 면역세포치료 분야 대표 석학인 켄 이시 일본 오사카대 교수, 프랭크 판 중국 남경대 박사, 개리 덩 미국 메모리얼 슬로안 캐터링 암센터 박사, 테루아키 세키네 일본 GC림포텍(일본) 대표(박사) 등 해외 연자가 참가해 주목받았다. 학회에 따르면, 이들은 미국임상암학회(ASCO)에서도 손꼽히는 암 전문의다.
국내에서도 암 전문의로 이근호 서울성모병원 산부인과 교수, 화순전남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이제중 교수, 신성훈 고신대학교 복음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이상헌 단국대학교 생명융합학과 조교수, 이준행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미생물학교실 교수 등이 연사로 나서 국내 항암면역요법과 통합암치료에 대한 연구현황에 대해 발표했다.
이번 행사에 참석한 전문가와 관계자들은 암 치료를 위한 면역요법과 한방요법 등 통합의학이 암 환자 치료 성과와 삶의 질을 개선시키는 데 효과적임을 제시했다. 단순히 치료 성과를 높이기 위한 연구뿐만 아니라 암 환자를 중심에 두고 치료를 전개하는 통합암요법이 이뤄질 수 있도록 변화해나가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끝없이 진화하는 항암치료…패러다임 핵심은 '항암면역요법'
이번 행사에서 가장 주목된 것은 역시 면역요법이었다. 국내외 전문가 다수가 면역요법이 갖는 암 치료 성과 개선에 기대를 걸었다.
이제중 화순전남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박셀바이오 대표이사)는 “이용가능한 모든 치료를 동원했는데도 질환이 진행된 환자에게 면역치료제를 적절하게 혼합해서 사용해 질환 관련 수치를 크게 떨어뜨릴 수 있는 것이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신성훈 고신대학교 복음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도 “면역요법은 환자 삶의 질 향상을 이뤄내 화학요법을 더 많이 대체해나갈 것”이라며 “기존 화학요법 효과까지 높이고, 표적항암제와의 병용 등 다양한 면역복합요법에 대한 효율성이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복합암면역치료’를 발표한 이준행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미생물학교실 교수는 “항암면역요법은 1863년부터 현재까지 오랜 기간 발전돼왔고, 현재는 많은 암에서 면역항암제가 FDA 승인을 받고 있다”며 “이제 암 치료 패러다임은 면역요법으로 전환돼 복합면역치료 등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테루아키 세키네 박사도 ‘면역세포 항암치료의 잠재력’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이전까지 면역요법은 항암 표준요법이 아니었지만, 현 단계에서 면역세포를 통한 치료는 가장 전도유망한 암 치료법이 됐다”며 “면역세포를 기반으로 한 항암면역요법은 가까운 미래에 암 표준치료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GC녹십자셀에 따르면 테루아키 박사는 일본 내에서 항암면역세포치료의 ‘아버지’로 불릴 만큼 유명한 암치료 전문의다.
켄 이시 교수는 항암면역요법에서 면역조절물질 등을 통해 면역력을 회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에 주목했고, 프랭크 판 박사는 항암면역요법인 CAR-T 치료제를 통해 혈액암 치료 성과를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환자중심 통합의학, 더 나은 암 치료를 위한 방안"…다학제적 접근 이뤄져
통합의학 측면에서의 암 치료 성과 향상도 여러 해외 연자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다뤄졌다.
개리 덩 박사는 ‘표준 암 치료에서 통합종양학’이라는 발표를 통해 “암 환자는 단순히 수술·치료제를 통한 증상 완화뿐 아니라 환경·감정·정신·사회·재정 등의 측면을 고려해 의사와의 상담, 심적치료, 식이요법, 영양관리, 운동, 음악요법 등이 함께 이뤄지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며 “이러한 통합항암치료는 근거중심의학에 따라 데이터가 확보되고 있으며, 미국 내 주요 메디컬 센터에서 통합의학 프로그램 적용이 시도되고 있다”고 밝혔다.
핑핑 리 중국 북경의대 종양병원 중의과 교수도 ‘암치료에서 중의학의 역할’을 발표하면서 “암치료가 갖는 복합성, 현 치료법의 한계와 더 나은 치료 요구, 임상연구에서 확인된 근거 등은 전통중국의학과 서양의학이 융합돼야 하는 이유”라며 “전통중국의학과 서양의학 융합 치료는 암 환자 생존율과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내에서도 한의학과 정밀의학을 통한 통합의학 접근이 시도되고 있다. 이준환 한국한의학연구원 임상의학부 책임연구원(박사)은 “암 치료에 대한 한의학 효과를 확인·입증하기 위한 임상연구가 국내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연구를 통해 한의학은 기본적인 암 치료 외에 암 환자가 겪는 다른 통증이나 증상까지도 완화시켜줄 수 있는 가능성이 확인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상헌 단국대학교 생명융합학과 조교수는 ‘정밀의학시대의 통합암치료’에 대해 “암 치료가 환자중심의학으로 자리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체내 면역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마이크로바이움’ 등을 정밀하게 분석하는 것도 암 환자 니즈를 해결하는 단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약요법을 통한 위암 치료 △심신요법 △운동요법 △음악요법 등도 다학제적 통합암치료 세션을 통해 다뤄졌다.
다만 통합의학 활용에 다소 소극적인 의견도 확인됐다. 이근호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항암제 부작용 치료, 방사선 부작용 치료, 림프부종치료 등 여러 항암요법이 실질적 치료를 하는 상급종합병원이나 병원급이 아닌 일차병원 등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최근에는 고주파 온열암 치료나 ‘미슬토(mistletoe)’ 주사요법도 많이 시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슬토 주사요법은 환자 면역체계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면서 “특히 미슬토 요법은 치료가능성이 언급되지만, 임상연구를 통해서는 유효성이 확인되지 않았다. 최근에는 데이터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며 “암 치료는 표준요법이 우선돼야 하고, 이른바 ‘자연의학’ 등은 보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암 진단 기술 선진화도 조명됐다. 유전체분석 전문업체 이원다이에그노믹스EDGC) 이성훈 기술개발본부장은 “액체 생체검사는 조직생검에 비해 암 조기발견, 암 진단, 모니터링, 생존율 분석 등에 잠재력을 갖고 있다”면서 “자체적으로 갖추고 있는 액체생검 시스템은 암 유발 변이부터 혈액 속 암 세포까지 확인할 수 있는 최첨단 정밀의학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최낙원 대한통합암학회 이사장은 “최근 독일 뮌헨에서 열린 학술대회에 참석해 보니 유럽에서도 통합 암 치료 연구가 활발했다”며 “이번 국제학술대회를 통해 전 세계 최신 통합 암 치료 동향과 중요성이 확인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