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까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비준을 완료하겠다."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는 최근 닛케이아시안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베트남의 경제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데 있어 TPP 조기 발효가 필수적이라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글로벌 무역주의의 혜택을 받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상황에서 베트남이 TPP를 주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TPP는 베트남과 일본, 호주, 브루나이, 캐나다, 칠레, 말레이시아, 멕시코, 뉴질랜드, 페루, 싱가포르, 미국 등 12개국이 참여하는 경제협정이다. 당초 미국 주도로 협상이 진행됐으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2017년 1월 일방적인 탈퇴를 선언하면서 11개국 간 새로운 협정, 즉 TPP-11로 거듭나게 됐다.
발효된다면 국가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전 세계의 38.2%를 차지하고 있어 TPP 출범 시 아시아·태평양지역 최대 경제통합체이자 세계 최대 규모의 FTA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회원국의 절반에 달하는 최소 6개국이 의회 비준을 해야 정식 발효된다. 베트남 정부가 11월에 끝나는 국회에서 비준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도 발효 시기를 앞당기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멕시코와 일본, 싱가포르가 이미 비준을 마친 만큼 베트남까지 비준에 동참하면 2개국 승인만 남게 된다. 베트남 정부는 태국과 인도네시아 등 다른 국가의 추가 가입도 독려한다는 계획이다. 푹 총리는 "신입 회원국의 추가를 환영한다"며 "TPP-11이 발효될 수 있도록 최종 비준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TPP 발효에 앞서 베트남의 역할이 주목 받는 이유는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트럼프식 보호 무역주의 확대 등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도 베트남의 경제 성장률이 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이 최근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높은 외국인직접투자(FDI) 비율과 제조업, 소비 증가 등의 영향 속에 2018년 베트남 국내총생산(GDP)성장률은 7%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아세안 내 가장 빠른 성장률" 베트남이 TPP 선도할까
스탠다드차타드 아시아 부문 이코노미스트인 치두 나라야난은 "베트남은 2017년과 마찬가지로 2018년과 2019 년에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중에 가장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며 "부동산과 전자제품 제조 부문에 대한 FDI 유입이 여전히 강하기 때문에 중기적인 지속 가능한 성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는 미·중 무역전쟁 등 보호 무역주의로 인해 중국과 멕시코 등 상당수 경제가 타격을 받고 있는 점과 대조적인 부분이다. 실제로 베트남이 글로벌 무역주의의 '최대 수혜국'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미국 정부의 관세 조치에 대해 미국 기업들이 베트남을 새로운 제조 허브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베트남에 대한 미국 정부의 무기 금수 해제 조치에 따라 베트남 내 무기 거래를 넘어 자유 무역 확대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 인도네시아 등과 남중국해를 두고 갈등을 빚고 있는 베트남은 지난 2004년부터 2013년까지 군사비 지출을 2배로 늘렸다.
지난 몇 년간 스페인, 네덜란드, 이스라엘 등 다른 국가들과 군사 관계를 확대하기 위한 노력에도 집중해왔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베트남은 지난 2005년 이후 군사비 지출을 700% 가까이 늘리면서 세계 8번째로 큰 무기 수입국으로 성장했다.
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최근 일본을 방문한 푹 총리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의 회담을 통해 무역 및 해양 안보 분야에서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TPP 조기 발효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국의 영향력이 넓어지고 있는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협력해야 한다는 복안이 깔린 것으로 보여 TPP 시대를 앞두고 베트남이 영향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