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투기꾼으로 내모는 신뢰잃은 정책

2018-09-1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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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오 부장]

“서울 집값이 다 오르는데 이 동네만 그대로야. 지금이라도 전세 끼고 강남 아파트를 사야 하는 거 아닌가?”
지방에서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한 후 서울 강북으로 이사온 매형이 이달 초 심각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그래도 처남이 언론사 부동산담당 데스크이니 잘 알 것이라며 도움말을 청한 것이다. 강남 집값이 너무 올라 지금 투자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다고 설득해 간신히 만류했다. 그래도 정 투자를 하고 싶으면 몇 달간이라도 발품을 팔아 강남 이곳 저곳을 잘 알아본 후 투자를 할지 다시 고민해 보라고도 조언했다.

그런데 60평생 투기는커녕 재테크조차 제대로 해보지 않았던 교장선생님이 왜 갑자기 강남 투자를 생각하게 됐을까. 그것도 하나뿐인 집을 팔고 외곽이나 지방 전셋집으로 옮기는 불편까지 감수하며 전 재산에다 대출까지 받아 그 위험하다는 ‘갭투자’를 하겠다고 나설 생각을 하게 됐을까. 더구나 그때는 정부가 며칠 후 역대급 고강도 부동산시장 안정대책(9·13대책)을 내놓겠다고 엄포를 놓은 시점이었다.
연일 신문과 방송에서 서울 집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는 뉴스가 쏟아지고, 주변에서는 “아무개가 강남에 집을 샀더니 집값이 올라 몇 개월 새 몇 억 벌었다더라”는 얘기가 들린다. 그러니 정년퇴직 후 가만히 앉아 있다가는 ‘안정된 노후’를 잃어버릴 것 같은 상대적 박탈감이 엄습해 왔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며칠 전 정부가 서울·수도권에 투기지역을 추가로 지정하고 주택공급 확대계획을 담은 ‘8·27대책’을 내놓았지만 전혀 약발이 먹히지 않은 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정부가 투기지역으로 지정하면 투자할 만한 곳이라고 검증해준 격이니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얘기마저 나돌았다. 결국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국민들이 신뢰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설익은 정책은 부동산시장을 안정시키기는커녕 오히려 투기를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시장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잘못된 처방을 할 경우는 더 그렇다.
정부가 발표한 ‘8·27대책’ 자료를 보면 ‘서울 등 국지적 과열현상은 수도권 공급부족에 대한 우려’라고 원인을 제대로 적시했으면서도 ‘주택 수요 및 공급에 대해 분석한 결과 향후 5년간 서울·수도권의 주택공급은 원활할 것으로 전망’이라는 시각도 드러냈다. 그리고 서울·수도권의 신규주택 공급은 신규 수요를 초과하는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대부분 부동산 전문가들이 최근 집값 상승의 원인과 해결책으로 공급문제를 지적하고 있는데, 정부는 서울 주택공급이 충분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 인식을 갖고 있는 정부가 제대로 된 주택공급 대책을 내놓을 수는 없다. 정부가 그날 발표한 `30여곳의 공공택지 추가개발‘은 부처 간 협의는 물론 사전 검토조차 충분하지 못한 설익은 대책이었다.

결국 정부는 ‘8·27’ 대책 발표 이후 서울 집값이 더 큰 폭으로 오르자 고강도 세제 및 금융 처방인 ‘9·13’ 대책을 내놓았다. 그리고 주택공급 대책을 9월 21일 추가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아직도 집을 지을 택지 확보를 놓고 불협화음이 끊이질 않아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최근 연이어 일관성 없는 정책이 발표된 것도 국민들의 신뢰를 떨어뜨린 요인이다. 정부가 다주택자를 임대사업자로 유도하기 위해 임대주택 등록에 큰 혜택을 줬다가 갑자기 임대사업자를 투기주범으로 지목하고 신규 등록에 혜택을 대폭 축소했다. 또 ‘9·13’ 대책 중에도 무주택자 청약 기회를 늘리기 위해 1주택자의 기회를 박탈했다가 사흘 만에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정책이 갈지자(之)로 왔다갔다하니 정책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부동산정책의 목표는 집값 잡기만이 아니다. 집값 안정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이 보다 편하게 살 수 있도록 주거안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최근 잇단 부동산 규제정책으로 불편해진 국민들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집값을 잡겠다고 무분별하게 과도한 규제 처방을 남발한다면 더 큰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다행히도 다주택자에게 세금폭탄을 때리고 돈줄을 죄는 역대급 처방인 ‘9·13’ 대책으로 강남 부동산시장 과열이 한풀 꺾인 모습이다. 하지만 정부가 정책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부동산시장은 언제든 다시 불안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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