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익 칼럼] 제갈공명과 유영민의 공명(功名)

2018-09-05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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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남풍이 불 때를 기다려라

 

 


성공의 관건은 적시(適時)다. 시작이 반이니 타이밍만 맞아도 7할은 성공이다. 주유의 화공이 조조 100만대군을 궤멸한 적벽에서의 승리는 잘 벼리어진 화살 때문이 아니다. 동남풍이 부는 때를 맞춘 제갈공명의 적시였다. 적시보다 때를 만드는 작시(作時)가 분명 상수다. 그러나 그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제갈공명도 바람의 방향을 바꿀 수는 없다.

정부와 업계가 연내 5G(세대) 상용화에 합의했다. 빠르면 12월1일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가 동시에 5G 전파를 송출하기로 한 것이다. 내년 3월 상용화 계획을 석달이나 앞당기는 셈이다.
업계는 장비선정 후 전파 송출 개시까지 보통 석달이 걸릴 것으로 본다. 12월1일 일정에 맞추려면 장비선정이 이미 끝났어야 한다. 물리적으로 연내 5G 서비스가 시작되려면 이달 안에 이동통신 3사는 장비선정 작업을 끝내야 한다. 중국 화웨이 장비를 빼면 개발이 완료된 장비는 없다. 선택지는 분명한 데 선택이 쉽지 않다. 보안 문제를 이유로 정부가 미국의 눈치를 본다.

5G에 맞는 서비스도 없다. 5G는 이전에 비해 전송속도가 최대 100배나 빠른 게 장점이다. 하지만 동영상을 보는 데는 현재 LTE로 충분하다. 자율주행차 등 5G에 걸맞는 상품이 나오려면 시기상조다.

업계에선 5G 상용화 비용을 총 20조원으로 추산한다. 초기 전국망을 까는 데만 10조원이 들어간다. 비용대비 수익이 추산조차 안된다.

남동풍이 불려면 멀었는데 정부는 화살을 쏘라고 한다.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는 일단 시위를 당겼다. 통신은 대표적 규제산업이다. 업계는 정부의 심중을 읽어야 한다. 장수의 명령에 따를 수 밖에 없다.

북서쪽을 겨냥한 화공이 동남풍 없이 성공할 수 있을까. 연내 5G 상용화는 분명 적시가 아니다. 그럼 작시가 가능할까. 유명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무슨 수로 이달 중 네트워크 장비 개발이 완료되도록 하고, 연내 자율주행자동차가 도로 위를 달리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장수가 작전판에서 핀 하나를 옮기면 병들은 수백리를 행군해야 한다.

 

연내 5G 상용화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일단 유명민 장관은 대한민국 4차산업 혁명의 역사에 이름 석자를 남길 수 있다. 세계최초 5G 상용화의 기수란 수식어가 붙을 것이다. 관료가 공을 세워 이름을 드러내는 것, 즉 공명(功名)을 추구하는 건 기업가가 이문을 남기려는 것과 같다. 악덕은 아니다.

다만 앞뒤를 가려가며 해야 한다. 정부가 연내 하겠다는 5G 서비스는 이동식 라우터를 이용한 것이다. 에그처럼 노트북에 꽂아 인터넷을 쓰는 것이다. 스마트폰에 5G 전파를 쏘는 것은 아니다.

앞서 미국 버라이즌이 가정용 인터넷을 통해 연내 5G 서비스를 하겠다고 했다. 모바일 서비스가 아니어서 세계최초 5G 서비스로 볼 수 없다고 평가절하한 게 우리 정부다. 하지만 무시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이동성을 명분으로 노트북 라우터를 통한 5G 서비스를 세계최초라고 하는 것도 궁색하긴 마찬가지다. 공명이 아닌 허명(虛名)이다.

병졸의 희생을 밟고 얻은 장수의 공명을 칭송할 수 있을까. 이통3사는 장수의 허명을 위해 20조원을 쏟아붓는 사업을 마스터플랜도 없이 허겁지겁 시작해야만 한다. 초기 시행착오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비용이 공중분해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과 일본 등이 상용화 일정을 우리보다 늦춰잡은 것은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다. 우리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비용을 줄이겠다는 전략이다. 달나라에 첫발을 디뎌 정권을 재창출하겠다는 건 미소냉전시대의 발상이다. 

세계최초 5G 상용화란 타이틀이 우리 업체들의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날개를 달아줄 수도 있다. 하지만 국가 기간산업이란 통신의 특성상 이통3사가 5G 서비스로 해외시장에 진출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SK텔레콤이 SLD텔레콤이란 이름의 합작사 형태로 베트남 초기 이동통신 시장에 진출한 것을 제외하면 국내 이통3사가 통신 서비스로 해외에 진출한 적은 없다.

수혜는 기지국과 라우터를 만드는 네트워크 장비업체의 몫이다. 실제 5G 상용화 일정이 다가오면서 기지국을 만드는 에이스테크나 광네트워크 장비업체인 유비쿼스 등 관련 업체의 주가가 급등하고 있다. 국내 장비시장의 50%를 점하면서 해외시장 점유율은 4%에 불과한 삼성전자도 인도 등 신규 시장 공략에 마케팅 포인트가 생기는 셈이다.

역풍속에서 활을 쏘는 병사와 승리의 전리품을 나누어 갖는 병사가 다르다면 제대로된 장수라 할 수 없다. 물론 역풍이 부는 상황에선 승리조차 장담하기 힘들다는 현실도 엄존한다. 유영민 장관은 동남풍이 불기 전에 왜 활을 쏘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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