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은 정책의 방향을 화폐량이라는 냉철한 기호로 표시한 것이며, 정치권력이 자원배분의 우선순위를 정해 정부 활동을 이끄는 바로미터로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예산을 주목하는 이유다.
따라서 이 예산을 매년 소모적 예산으로 흘려보내지 않고 생산적 복지나 창조적 복지 사회의 비전을 실현토록 물줄기를 틀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우리 사회에 천착돼온 ‘확대와 성장’의 벡터를 ‘평등, 지속가능성 그리고 효율성’의 관계로 재정리하는 일이 급선무다. 앞으로 실현해야 할 사회상을 정책·이념과 유기적으로 결합시켜서 구상해야 한다.
둘째로, 균형을 상징하는 일반·지방행정 예산을 꼽아볼 수 있다. 민선시대가 7기에 이르며 꾸준히 빠른 속도로 늘어온 이 예산은 내년에는 정부예산의 17%에 다가선다. 저출산·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포퓰리즘적(인기영합) 사업도 한몫하고 있다. 이 분야의 예산증가는 지방의 예산자립도 악화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고 있다. 중앙이 지역을 억지로 챙겨주는 형국이다. 이를 해소하는 길은 세원의 대폭적인 이양과 동시에 교부금과 보조금을 대폭 줄이는 것밖에는 없다. 그래야 지자체의 능력을 키우고, 참신하고 능력있는 지방 행정가를 발탁할 수 있다. 남보다 조금 나은 지역이 아니라 아주 다른 지역을 만들 수 있다. 지금은 지역경쟁력이 국가경쟁력을 선도하는 시대다.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2001~2006년)이 지방분권을 위해 추진한 이른바 삼위일체 개혁(세원 이양 등)이 지금 아베 정권이 지방창생을 실천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셋째로, 나라의 미래를 담보하는 연구개발 예산을 짚어볼 수 있다.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은 1993년 1조원 벽을 깬 이래 거의 두 자릿수 성장을 지속해 2001년 5조원, 2008년 10조원을 넘어섰다. 그리고 11년 뒤인 2019년에 20조원을 돌파한다. 2011년부터 연구개발 예산증가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지다가 2016년부터는 1%대로 추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20조원 돌파는 나름대로 정부가 노력한 흔적을 보여주는 수치다.
그럼에도 실제 연구개발에 들어가는 액수는 삼성전자의 그것과 거의 같거나 오히려 적을지도 모른다. 여당 대표가 내년도 정부 예산증가율이 전년 대비 9.7%인 데 비해 연구개발 예산 증가율이 3.7%에 그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국회에서 연구개발 예산을 더 늘리겠다고 한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따라서 이제는 정부가 꼭 해야 할 것과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고, 기업과 함께 매력적인 사업을 발굴해 성장의 모멘텀을 확보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정부 연구개발의 근간을 지키고 있는 출연기관도 자유도를 높여 역동성을 살리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내년도 예산을 보면 소득주도와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동시에 아우르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트라이앵글’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현재의 국민을 위한 보건·복지·고용과 지방 분야는 무겁게 취급하고 있다. 우리의 미래를 위한 연구개발 분야는 상대적으로 가볍게 느껴진다. 향후 국회 협의 과정에서 우리의 미래에도 더욱 신경 쓰는 의미있는 변화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