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의 이목은 곧 이뤄질 북·미 정상회담에 한창 쏠리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늙은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72)과 가장 젊은 지도자로 꼽히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34)의 세기적인 만남이다.
가장 잘사는 나라군에 속하는 나라와 가장 못사는 나라로 알려진 나라, 가장 개방된 나라와 밀폐된 나라, 가장 많은 핵을 가진 나라와 몇 개 시험한 나라. 이 두 나라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정상회담을 갖는 자체가 스토리텔링이고 격세지감과 상전벽해를 웅변한다.
장기간 북한과의 경제협력과 에너지 구상을 논의해 왔고, 남북과학기술협력에 나름대로 관여해 온 필자로서는 지난 10년의 갈라짐 속의 허송세월은 실로 가슴 아픈 일이었다. 때문에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 몹시 들떴고, 이어질 북·미 정상회담에 기대치를 높이고 있는 것은 당연한 처사가 아닐까 싶다.
다만 시대는 변했다. 모든 환경이 종전 사고의 연장선 상에 있지 않다. 우리도 북한도 미국도 ‘빅 베팅’이다. 명분보다는 우선 실리다. 남북 간의 판문점 선언은 앞선 정부의 선언들과 비슷해 보이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양측의 실리성이 곳곳에 담겨 있다. 북·미 정상회담에선 이 모습이 더 도드라질 것 같다. ‘(정치의) 월스트리트 선언’으로 불릴 정도로 엄중한 실리주의를 드러낼 수도 있다.
이 빅 베팅과 실리주의에서 우리가 얻는 것과 줄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것과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 등등의 치밀한 전략이 요구된다. 박빙의 외교책략이다.
기하학에서 어려운 문제는 소위 도형의 밖에서 또는 밖으로 보조선을 그어서 풀 수가 있다. 국가전략을 생각할 때도 보조선은 유효한 수단이 된다. 여기서 잠시 시각을 밖으로 돌려보자. 지난주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벌어지던 날,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과 인도의 모디 총리가 중국 허베이성 우한에서 만났다.
우한은 중국이 추진 중인 현대판 실크로드 경제권 구상 ’일대일로’의 요충지다. 시진핑이 모디를 그곳으로 부르고 직접 영접하며 일대일로 건설에서 인도에 협력을 요청한 것이다. 중국을 염두에 두고 인도와 연계협력을 모색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있다. 중·인 양국 정상은 다음날 시내 호반을 산책하는 등 이틀간 무려 6회에 걸쳐 회담을 했다. ‘자유롭게 열려진 인도·태평양전략’을 제창한 미·일과 이를 견제하는 중국과의 사이에서 국익을 챙기는 인도의 전략도 만만치 않다.
지난달 28일 미 워싱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정상회담이 있었다. 유럽문제를 두고 양국 사이는 틈이 많이 나 있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메르켈은 트럼프를 찾아가 철강·알루미늄 무역제재 조치를 풀어달라고 요청했다. 메르켈은 트럼프의 미국 제일주의에 대항하여 독일 제일주의를 보여준 셈이다.
세계는 한 치의 오차 없이 돌아가진 않지만 한순간도 쉬지 않고 움직인다. 우리가 판문점에 시선을 고정할 때 지구 다른 편에서는 또 다른 실리주의들이 부딪치고 있었다. 우리가 지금 남북에 몰입할 때 더 높은 곳에서 노려보는 눈들이 있다.
이 두 개의 사례는 ‘착안대국, 착수소국’의 바둑 전법을 생각나게 한다. 세계의 큰 판을 읽으면서, 실제로 움직일 때는 구체적이고 치밀해야 한다는 뜻이다. 포석과 행마는 표리일체다. 대국을 못 보면 옹졸해지고, 소국을 그르치면 손에 쥐는 게 없다. 대국과 소국도 선택할 수 없는 한 몸이다.
올 5월은 때이른 특별한 ‘정치의 여름’을 맞고 있다. 벌써 뜨겁게 달아 오르고 있다. 그럴수록 머리는 더 차갑게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