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김구는 중국군 장교로서 제19로군 정보처장과 상해병공창 주임을 겸임하고 있던 김홍일(金弘壹, 중국명 王雄)에게 ‘3일 이내로 도시락과 물통 속에 폭탄 장치를 해줄 것’을 부탁했다. 김홍일은 자강(自强)철공소를 운영하며, 19로군후원회 병기관계 책임자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향차도(向佽濤)에게 폭탄 제조를 맡겼다.
이에 향차도는 폭탄에 위장외피(도시락과 물통)를 입혀 위장폭탄을 만들었다. 원래 이 폭탄은 김구가 이봉창의거 이후 일본군의 주요인물과 군사시설 폭파계획을 세우고 상해병공창장 송식표와 교섭하여 입수해서 향차도의 집에 보관해 오던 것으로, 병공창 기술자 왕백수(王伯修)가 만든 것이었다. 향차도는 그 무렵 위장외피를 만든 경험이 있어서, 3일 이내에 쉽게 위장폭탄을 만들어 김홍일에게 줄 수 있었다.
백범일지에는 “윤봉길과 함께 거사계획을 세운 김구는 김홍일을 통해 3일 이내에 폭탄을 만들어 줄 것을 상해병공창에게 요청하고 병공창을 직접 방문하여 폭탄 성능을 확인한 후 20여 개의 폭탄을 제공받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역사적 사실(폭탄제조 장소 및 시기)과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아마 수년 후 백범일지를 쓰면서 발생한 착오 같다. 이때는 중국군의 상해병공창은 일본군의 상해 침공(1932. 1. 28)으로 그 시설과 부품 일체를 이미 항주와 남경으로 옮긴 상태였다.
(본지 폭탄 관련 사항은 필자가 그동안 알려진 내용과 입수한 자료의 내용이 크게 다른 점을 발견하고 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기록한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자료수집과 연구가 필요한 과제임을 밝힌다.)
한인애국단은 1931년 만주사변 직후 임정 산하에 결성된 비밀결사대로, 특무공작을 통해 독립운동을 활성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김구에게 그 전권을 위임했다.
의거 사흘 전 4월 26일, 실질적인 한인애국단 본부인 안공근 집에서 매헌의 입단 선서식을 거행하려 했다. 그런데 날씨가 사진을 촬영할 수 없을 만큼 흐려 다음날로 미뤘다. 1932년 4월 27일 매헌, 김구, 안공근, 사진촬영을 한 안낙생(안공근의 차남)이 참석한 가운데 입단 선서식이 엄숙하게 거행되었다.
유촉시 2편과 유시 2편
한인애국단 입단 선서식을 마친 후, 매헌은 사전 답사 겸 홍구공원을 산책하며 많은 생각에 잠겼다. 이때 발밑에 짓밟혀 누워 있는 잔디들 중에 다시 일어나는 것을 보자, ‘강한 자에게 짓밟힌 인간도 꿋꿋하게 일어나는 잔디처럼 되어야 할 텐데…’ 암담한 조국 현실의 쓸쓸함 속에서도 일말의 희망을 생각했다.
그날 저녁 매헌이 묵고 있는 여관 동방공우(東方公寓)에 김구 선생이 찾아왔다. 거사를 앞두고, 매헌의 이력과 감상 즉, 일종의 유서를 쓰라는 말이었다. 매헌은 김구 선생의 뜻을 알아채곤, 지니고 다니던 중국제 수첩에 자신이 그동안 살아온 <자서약력>을 단숨에 써내려갔다. 이후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 ‘청년제군에게’ 2편의 유촉시(遺囑詩, 죽은 뒤의 일을 부탁하거나 당부하는 글)와 ‘27일 신공원에 답청하며’, ‘백범 선생에게’ 2편의 유시(遺時)를 남겼다. 일필휘지(一筆揮之)로 막힘없이 써내려가는 매헌의 모습에 김구 선생은 연신 감탄만 할 뿐이었다.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듯이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동서양 역사에서 보건대 / 동양에는 문학가 맹자가 있고 / 서양에는 프랑스 혁명가 나폴레옹이 있고 / 미국에는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대 너희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
죽음을 각오하고 거사를 앞둔 비장함과 자식 사랑의 진수가 무엇인가를 너무나 선명하게 담겨 있는 시.‘강보에 싸인 두 병정(兵丁)에게’란 시의 표제가 말해주듯, 의혈남아 매헌의 자식 사랑의 진수와 아버지로서의 소망이 진한 울림과 공명을 자아내고 있다. 또한 매헌은 자식에게 어머니의 존재를 상기시킴과 동시에 위인을 거명해 놀라운 사해동포주의(四海同胞主義)를 피력했다.
청년 제군에게
피끓는 청년 제군들은 아는가 / 무궁화 삼천리 우리 강산에 / 왜놈이 왜 와서 왜걸대나
피끓는 청년 제군들은 모르는가 / 되놈 되와서 되가는데 / 왜놈은 와서 왜 아니 가나
피끓는 청년 제군들은 잠자는가 / 동천에 서색(曙色)은 점점 밝아오는데 / 조용한 아침이나 광풍이 일어날듯
피끓는 청년 제군들아 준비하세 / 군복 입고 총 메고 칼 들며 / 군악 나팔에 발맞추어 행진하세
이 시는 일종의 광복가(光復歌)로 매헌은 조국이 처한 암울한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밝히며, 조국 광복을 위해 우리 청년들이 일어설 것을 당부하고 있다.
27일 신공원(홍구공원)에서 답청(踏靑)하며
처처(萋萋)한 방초(芳草)여 / 명년에 춘색(春色)이 이르거든 / 왕손(王孫)으로 더불어 같이 오게
청청(靑靑)한 방초여 / 명년에 춘색이 이르거든 / 고려(高麗) 강산에도 다녀가오
다정한 방초여 / 금년 4월 29일에 / 방포일성(放砲一聲)으로 맹세하세
거사를 이틀 앞둔 매헌은 사전 답사한 홍구공원의 파릇파릇한 잔디를 밟으며 느낀 소감을 담담한 시로 표현했다. 밟히고 밟혀도 다시 일어나는 잔디의 경이적인 생명력에 자신을 빗대어 쓴 일종의 거사가(擧事歌)이다.
외외청산혜(巍巍靑山兮)여 높이 우뚝 솟은 웅장한 푸른 산이여
재육만물(載育萬物)이로다 만물을 품어 기르는 도다
묘묘창송혜(杳杳蒼松兮)여 저 멀리 곧게 서 있는 푸른 소나무여
불변사시(不變四時)로다 사시장철 변함이 없도다
탁탁봉상혜(濯濯鳳翔兮)여 번쩍번쩍 밝게 빛나는 봉황의 날음이여
고비천인(高飛千仞)이로다 천 길이나 드높이 날아오르는 도다
거세개탁혜(擧世皆濁兮)여 온 세상이 모두 흐림이여
선생독청(先生獨淸)이로다 선생 홀로 맑으시도다
노당익장혜(老當益莊兮)여 늙을수록 더욱 강건해짐이여
선생의기(先生義氣)로다 오직 선생의 의기뿐이로다
와신상담혜(臥薪嘗膽兮)여 원수 갚으려 온갖 핍박 참고 견딤이여
선생적성(先生赤誠)이로다 선생의 붉은 정성이로다
매헌의 백범관은 정확했다. 매헌의 상해의거로 임정은 조국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되었고, 김구는 임시정부의 지도자로서 그 지위를 대신할 사람이 없게 공고히 되어 조국 독립운동의 영도자가 되었다.
윤주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부회장
사진=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