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내 인생이 그렇구나 싶어요”…광화문 핫플레이스 ‘소상공인119센터' 가보니

2018-08-20 15:56
  • 글자크기 설정

소상공인119센터 개소 12일째, 정치인 줄이어

체감온도 40도 웃도는 기록적 폭염 속 천막 농성 중

일방통행 최저임금…“정부, 현실 몰라도 너무 모른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지난 9일 광화문 현대해상빌딩 앞에서 개소한 '소상공인 119센터'. [사진=신보훈 기자]


여의도에 상주하는 정치인들의 ‘핫 플레이스’가 최근 광화문에 들어섰다. 여당의 원내대표급 인사부터 야당의 당대표, 비대위원장 등 중량감 있는 정치권 인사들이 줄줄이 광화문광장을 찾고 있다. 지난 9일 최저임금 인상과 차등화안 부결에 반발해 소상공인연합회가 세운 ‘소상공인 119센터’가 그곳이다.

소상공인 119센터는 연합회 소속 단체 회원들이 당번제로 운영한다.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2타임으로 나눠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체감온도가 40도를 웃도는 후덥지근한 날씨 탓에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비 오듯 쏟아졌지만 의지할 것은 천막과 선풍기뿐이다.
연합회 소속 회원들은 모두가 자영업자다. 당번 날에는 가게 문을 닫고 하루치 장사를 포기해야 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다. 매출이 걱정되지 않느냐고 묻자 “가게 문 열고 자리에 앉아서 망하나 영업을 안 해서 망하나 매한가지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소상공인들은 “정부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며 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업종별로 사업 환경이 다르고, 임금 체계도 상이한데 급격하게 올린 최저임금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권순종 한국부동산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은 “공인중개소의 중개보조인들은 100만원 전후의 기본급과 정기상여금 형식의 수당을 받는다. 체결한 계약에 따라 수당의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며 “부동산업 특성상 비수기와 성수기가 있고, 이를 고려해 임금 체계가 형성돼 있는데, 산업에 대한 고려 없이 무조건 최저임금을 맞추라고 하면 어떻게 하냐. 현실과 맞지 않다”고 토로했다.

최윤식 한국인터넷콘텐츠서비스사업협동조합 이사장도 “모바일 게임 유저가 많아지면서 피시방을 찾는 사람들이 크게 줄었는데, 인건비는 살인적으로 오르고 있다”며 “24시간 운영되는 매장 특성상 야간수당, 휴일수당까지 지급하면서 고용해야 하는데, 한계치에 왔다. 종로에서 20년간 영업한 매장이지만, 임대 기간이 끝나면 정리하려고 한다”고 고충을 내비쳤다.

소상공인의 문제는 사업자만의 위기가 아니다. 점 단위 자영업체의 일자리가 감소하면서 현장 경험이 중요한 헤어숍, 메이크업숍에서 경험의 기회가 사라지고, 고령층이 많은 외식업에서는 생계수단이 줄고 있었다.

오세희 메이크업미용사회 회장은 “메이크업숍의 경우 시즌에 따라 손님 차이가 크게 나는데, 주말에 스태프를 고용하면 13만원씩 지급해야 한다”며 “임금이 너무 가파르게 오르다 보니 1인숍 원장이 많아지고 있다. 자연스레 스태프의 일자리도 줄고 있다”고 설명했다.

손계화 종로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도 “우리 매장은 작년 5명이던 직원을 한 명으로 줄였다. 고령층 직원은 본인이 최저임금을 선택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예외가 없다”며 “60세 이상의 고령층 일자리는 소상공인에게서 나온다. 소득주도 성장을 한다고 하지만, 최저임금 때문에 일자리가 없어지면 그나마 받던 임금도 받을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119센터를 방문한 정치인들은 소상공인이 토로하는 어려움을 듣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저마다 “소상공인 정당으로 거듭나겠다”, “법률적인 지원책을 검토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현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미 수없이 많은 정치인이 다녀갔고, 지원을 장담했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는 29일에는 소상공인 총궐기를 앞두고 있다. 소상공인들의 조직화한 힘을 보여주겠다는 것이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월급쟁이들의 경쟁에 밀려 자영업을 선택했지만, 이들은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컴퓨터 AS센터를 운영하는 한 업체 사장은 “우리 같은 사람들은 마흔이 넘으면 갈 곳이 없다. 월 150만원씩 받는 일자리도 없어서 자영업에 뛰어든다”며 “다들 드러내놓고 불편도 못 하는 순한 양이다. 그동안 힘들어도 ‘내 인생이 그렇구나’ 하면서 살아왔다. 지금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체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