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25)이 지난해 일주일간 누렸던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자리를 탈환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3승을 수확한 박성현은 다승 부문 공동 선두에 오르며 2년 연속 상금왕과 올해의 선수 수상에 성큼 다가갔다. 드라마 같은 역전 우승 퍼트 이후 주먹을 불끈 쥔 박성현의 운명을 가른 건 마지막 18번 홀이었다.
20일(한국시간) LPGA 투어 인디 위민 인 테크 챔피언십(총상금 200만 달러)이 열린 미국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의 브릭야드 크로싱 골프클럽(파72). 대회 마지막 날 18번 홀(파4)은 핀까지 거리 272야드로 짧게 세팅됐다. 장타자들이 티샷으로 한 번에 그린에 올려 이글을 잡을 수 있는 홀. 박성현에게 유리했다. 욕심을 버린 박성현은 두 번의 기회 중 한 번을 잡았다.
그사이 압박에 시달리던 살라스는 잔뜩 긴장했다. 2014년 킹스밀 챔피언십에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한 뒤 4년 만에 정상을 눈앞에 뒀으니 그럴 만했다. 17번 홀(파4) 티샷 실수로 러프에 빠졌고 결국 3퍼트 보기로 한 타를 잃었다. 박성현과 공동 선두.
운명의 18번 홀을 먼저 홀아웃한 건 박성현이었다. 드라이버 대신 3번 우드를 잡아 그린 주변에 떨어뜨린 뒤 약 20야드 어프로치 샷을 약간 실수해 버디를 잡는 데 실패했다. 오르막 3.5m 버디 퍼트가 빗나갔다.
살라스의 티샷은 다시 흔들렸다. 하지만 깊은 러프에서 친 두 번째 샷이 홀 1.2m 옆에 붙었다. 넣으면 우승. 긴장을 너무 한 탓일까. 어드레스에 들어간 뒤 다시 라이를 살폈다. 결국 짧은 버디 퍼트를 빠트리고 쓴웃음을 지었다. 치명적이었다.
드라마 같은 연장 돌입. 휴대폰을 보며 대기하던 박성현에게 긴장감은 엿볼 수 없었다. 결과가 그대로 반영됐다. 18번 홀에서 진행된 연장 첫 번째 홀. 박성현과 살라스는 나란히 두 번째 샷을 그린에 올려 버디 퍼트를 남겼다. 살라스가 5m 오르막 버디 퍼트를 놓친 뒤 박성현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8m 내리막 버디 퍼트를 침착하게 성공시킨 뒤 오른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박성현은 “연장전 버디 퍼트를 남기고는 전혀 긴장되지 않았다”며 “상대 선수가 아쉽게 퍼트를 놓쳤고 부담 없이 퍼팅했다”고 말했다. LPGA 투어에서 2년 만에 메이저 2승 포함 통산 5승을 쌓은 선수다운 소감이다.
박성현은 올 시즌에만 3승을 수확했다. 지난 5월 텍사스 클래식을 시작으로 6월 메이저 대회 KPMG 여자 PGA 챔피언십, 이번 대회 우승으로 3승을 쓸어 담아 아리야 쭈타누깐(태국)과 함께 다승 부문 선두에 올라섰다. 올해 한국 선수들이 합작한 우승 횟수도 8승으로 늘었다.
박성현은 이번 대회 우승과 함께 쭈타누깐이 7위에 머물면서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자리를 되찾았다. 지난해 11월 일주일 동안 여왕 자리에 앉았다가 물러난 뒤 9개월 만이다. 또 2년 연속 상금왕과 올해의 선수 수상 전망도 밝혔다. 세계랭킹 1위 탈환 사실을 몰랐던 박성현은 깜짝 놀라며 “세계랭킹 1위에 다시 올라 정말 영광이다. 가능하면 길게 1위를 유지하도록 노력하겠다”고 기뻐했다.
자동차로 유명한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 이번 대회는 골프 코스 4개 홀이 경주장 안에 있다. 또 이 대회 우승자는 자동차 경주 ‘인디 500’ 우승자가 우유를 머리에 붓는 전통 세리머니를 따와 우유를 이용한 세리머니를 펼친다. 지난해 초대 챔피언이었던 렉시 톰슨(미국)은 머리에 우유를 부었다. 박성현은 이날 인디 500 자동차 경주장의 피니시 라인에 키스를 하고, 우유를 마시는 세리머니로 우승을 자축했다. 박성현도 “피니시 라인에 키스 세리머니를 한 게 즐거웠다”며 우승을 만끽했다.
한편 우승 경쟁을 펼쳤던 양희영이 22언더파 단독 3위, 신인왕을 예약한 고진영이 20언더파 단독 4위에 올라 ‘톱5’ 안에 한국 선수 3명이 이름을 올렸고, 이미향도 18언더파 공동 7위를 기록해 ‘톱10’에 들었다. 최종일 1타밖에 줄이지 못한 톰슨은 17언더파 공동 12위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