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의 사회주의 진영이 맞선 갈등의 도가니였다. 화력을 쓰지 않는 싸움, '냉전(cold war)' 시대다.
1990년 소련이 무너지면서 종식된 줄 알았던 냉전이 최근 다시 불거졌다. 세계 경제 양강(G2)인 미국과 중국의 첨단기술 주도권 싸움, 이른바 '기술냉전(technology cold war)'이다.
미국과 중국 대표단이 오는 22일부터 23일까지 미국 워싱턴 DC에서 3개월간의 교착상태 끝에 무역협상을 재개하기로 했지만, 별 진전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이유다.
미국 리스크(위험) 컨설팅업체인 유라시아그룹은 올 초에 낸 '2018 톱 리스크' 보고서에서 미·중 기술냉전을 올해 세계 경제를 위협할 10대 리스크 가운데 셋째로 꼽았다. 중국의 부상과 우발적 충돌이 차례로 1·2위에 올랐지만, 기술냉전이 두 리스크를 더 자극할 수 있는 요인이라고 보면 순위가 무색해진다.
대니얼 그로스 유럽정책연구센터 소장은 최근 기고 전문매체 프로젝트신디케이트에 쓴 글에서 미·중 무역전쟁이 승자독식 구조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전개되고 있는 무역전쟁은 모두가 패자일 수밖에 없었던 '구경제(old economy)'의 무역전쟁과 차원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첨단기술 경쟁력을 다투는 '하이테크 전쟁(high tech war)'에서는 기술을 선점한 승자가 모든 걸 독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무역전쟁 표적은 첨단기술에 쏠려 있다. 중국의 첨단기술 육성책인 '중국제조 2025'가 과녁 정중앙에 들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가 내는 기술매체인 MIT테크놀로지리뷰는 최근 미국의 대중 폭탄관세가 우주항공·통신·로봇공학 등에 집중됐다며, 기술 부문이 미·중 무역전쟁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G2가 최첨단 기술을 놓고 전면전에 나선 건 일련의 기술이 세계 경제의 미래를 좌우할 '4차 산업혁명'의 요체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5세대(5G) 이동통신,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클라우드컴퓨팅 등 기술전쟁의 전장은 넓디넓지만, 4차 산업혁명 생태계의 기반은 5G 통신망으로 모든 걸 인터넷으로 연결하는 사물인터넷(IoT)이다. 관련 기술을 선점하면 4차 산업혁명 생태계를 장악할 수 있다.
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는 트럼프 행정부가 특히 탐내는 기술이 바로 5G 이동통신이라고 지적했다. 5G 기술표준을 선점하는 나라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조사회사 IHS마킷은 2035년 5G 이동통신에서 비롯될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이 12조3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 지난해 미국 GDP(19조3900억 달러)의 63%에 달한다.
미국은 현재 5G 기술경쟁에서 중국에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 이동통신인터넷협회(CTIA)는 지난 4월 낸 보고서에서 5G 이동통신을 시작할 준비가 가장 잘된 나라로 중국을 꼽았다. 한국과 미국이 그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