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이 국채와 회사채를 남발하기 시작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2008년부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중심으로 세계 주요 중앙은행이 금융위기에 맞서 초저금리 기조 아래 대규모 돈 풀기에 나서면서 신흥국은 달러를 비롯한 외화로 대거 빚을 냈다. 그러나 글로벌 중앙은행들이 10년 만에 금리인상을 비롯한 통화긴축으로 선회하면서 신흥국이 그동안 발행한 채권이 금리 부담과 자금 이탈이라는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
◆신흥시장, 채무 만기 도래·자금 이탈 '이중고'
금리가 높아지면 상환 부담도 늘어나는 탓이다. 금융정보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올해부터 2020년까지 신흥국에서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 규모는 3조2297억 달러(약 3640조1949억원)로 추산된다. 통상 채권 상환 시기가 도래하면 새로운 채권 발행을 통해 채무액을 충당해야 하지만 달러 등 외화 표시 채권으로 자금을 조달해온 신흥국으로서는 부담이 늘 수밖에 없다.
자본 유출도 신흥국 경제의 리스크로 작용할 전망이다. 통상 미국 등 선진국들의 금리가 높아지면 투자자들은 신흥시장의 주식과 채권에 투자했던 자금을 대거 회수해 금리 상승 기조인 선진국에 투자한다. 지난 1994년 이후 미국에서 기준금리가 오를 때마다 투자금이 흘러 들어온 것도 이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과 2013년 일어났던 긴축발작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올 들어 신흥시장에서는 자본유출이 두드러졌다. 미국 펀드분석업체 이머징마켓포트폴리오리서치(EPFR)에 따르면 지난 4월 말부터 7월 초까지 신흥국 채권펀드에서 유출된 자금은 155억 달러에 달한다. 시장에서는 기초 경제 여건 대비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했던 국가들의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경계감이 확산되고 있다.
신흥국들은 과거 외환위기를 발판 삼아 자본유출에 대비해 외환보유액을 늘리고 있는 추세다. 닛케이아시안리뷰의 7일 보도에 따르면 선진국을 포함한 전 세계 외환보유액은 11조6000억 달러로 2010년에 비해 40% 늘었다. 중국은 10% 증가한 3조1100억 달러로 세계 최대를 기록했고, 멕시코는 1780억 달러로 70% 늘었다. 인도네시아도 60% 늘어난 1198억 달러를 기록했다.
◆외환보유액 늘렸지만...달러 강세에 연쇄 디폴트 우려
연준의 긴축 행보 속에 달러 강세가 지속되면 달러 표시 채권을 발행한 기업들의 빚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기업이 자금을 조달했을 당시보다 달러 가치가 높아지면 변제해야 할 금액이 그만큼 커지는 탓이다. 달러 강세로 신흥국의 채무 부담이 높아지면 연쇄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기업들의 디폴트 사례가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중국 석유·가스공급기업 ‘차이나에너지리저브앤드케미컬스(CERC)’가 달러 표시 부채 3억5000만 달러 상당을 디폴트 처리했다. 홍콩 상장 부동산개발회사인 신창집단(新昌集團)도 마찬가지다.
중국 당국이 과잉 부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통화긴축을 서두른 결과, 기업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향후 3년간 만기가 도래하는 신흥국 부채 중에서도 중국의 상환 규모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기업과 정부가 2020년까지 상환해야 하는 부채는 1조7531억 달러로 신흥국 전체의 54%를 차지한다.
연준이 올해 하반기와 2019년에 점진적인 금리인상을 예고한 만큼 금리상승과 달러 강세가 신흥시장 경제 성장세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아르헨티나 페소화, 터키 리라화 등 신흥국 통화 가치가 꾸준히 하락하는 상황에 강달러 기조가 지속되면 경제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