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등 주요 신흥국의 올해 해외자금 유출 규모가 10년 만에 최고치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과 글로벌 무역 갈등에 따른 불확실성이 높아진 가운데 아르헨티나와 터키 등을 중심으로 촉발됐던 신흥국 경제 위기가 아시아 신흥 시장까지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아시아 신흥국도 예외 없다···자본 유출 규모 10년 만에 최악
당초 신흥시장 투자가들과 애널리스트들은 세계 경제 성장률과 정치적 안정성을 토대로 아시아 경제의 펀더멘털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왔다. 지난 1월만 해도 아시아 신흥국의 올해 경제 성장률이 2017년에 이어 안정적인 흐름을 지속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불과 몇 개월 만에 상황이 바뀐 것은 글로벌 유동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날 블룸버그 JP모건의 아시아달러지수(ADXY)는 전날보다 0.17% 낮은 108.69로 올해 들어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인상한 데다 미·중 무역 전쟁 등 글로벌 통상 갈등이 가속화함에 따라 아시아 내 외국인 투자자 이탈이 심화됐다는 지적이다.
JP모건체이스의 아시아(일본 제외) 주식리서치 분야 대표인 제임스 설리번은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를 통해 "신흥 시장에 좋은 상황은 아니다"라면서 "향후 1년간 기대했던 미 금리 인상의 영향이 3분의2 정도만 나타났으며, 연준의 매파적 성향에도 신흥 시장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아시아 신흥국들이 터키나 아르헨티나처럼 환율 방어를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할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필리핀 중앙은행은 이번 주 예정된 통화정책회의에서 현행 금리보다 0.25%p 오른 3.5% 수준으로 기준금리를 상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필리핀 중앙은행은 2014년 이후 처음으로 지난달 기준금리를 인상했었다.
블룸버그 조사에 따르면 태국 중앙은행은 이번 주 예정된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현행 1.5% 수준으로 동결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경상수지 흑자 폭이 국내총생산(GDP)의 9%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바트화 가치가 이번 분기에만 4.6% 하락한 만큼 신중한 행보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3분기에는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아르헨티나·멕시코 등 중남미 신흥국도 불안
아시아 이외의 신흥국도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투자 전문 매체 더 스트리트에 따르면 18일 기준 신흥시장 중대형주 주가를 반영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시장(EM) 주식지수는 전날 대비 1.38% 떨어진 1090.69로,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발표 이후 나흘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올해 초와 비교하면 2.97% 낮은 수치다.
메르발 지수 등 아르헨티나의 주요 주가지수는 8% 이상 급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멕시코 IPC 지수와 브라질 보베스파 지수도 줄줄이 떨어졌다. 중남미 주요국 주가지수가 동반 하락하면서 MSCI 라틴아메리카 EM 지수는 전날보다 0.53% 내린 2414.75 수준을 보였다. 연초와 비교하면 약 15% 떨어진 수준이다.
블룸버그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 미국에 상장된 신흥시장 펀드의 유출 규모는 27억 달러(약 2조9957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간 유출 규모로는 지난 1년 동안 가장 높은 수준이다. 앞서 국제금융협회(IIF)는 보고서를 통해 올해 신흥국으로 유입될 자본 규모 전망을 기존 전망치보다 낮은 1조2200억 달러(약 1353조5900억원) 수준으로 하향 조정했다.
BNP파리바 등의 일부 전문가들은 신흥국에서의 '최악의 상황'은 끝났다는 관측을 내놓기도 한다. 태국 바트화와 필리핀 페소화 등 일부 지역 통화 가치가 연말까지 소폭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미 국채금리 상승 등 달러 강세를 부추기는 상황에 있는 만큼 적어도 3분기 말까지는 외국 자본이 신흥 시장에 대한 진입을 보류할 수 있다고 코메르츠방크 등은 전했다. 글로벌 불확실성이 높아진 데다 달러 강세로 인해 달러화 표시 부채 처리에 대한 부담이 높아질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