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뉴질랜드 신탁회사의 주 4일제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생산성은 높아졌고 스트레스는 낮아졌다. 경영자와 직원 모두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CNN에 따르면 약 240명의 직원을 둔 뉴질랜드 신탁회사 퍼페추얼 가디언은 올해 3~4월 시행한 주 4일제 실험 결과를 지난주 발표했다. 근무시간은 주 40시간에서 32시간으로 줄었지만 급여는 달라지지 않았다.
앤드류 반스 CEO는 CNN에 “우리 팀을 위해 더 좋은 근무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주 4일제를 시도하게 됐다”면서 “우리 팀이 보여준 반응은 황송할 지경이다. 내가 예상한 바를 훨씬 넘었다”고 말했다.
퍼페추얼 가디언 직원들은 주 4일제 실험 후 78%가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고 응답했다. 지난해 54%에서 큰 폭 뛰어오른 수치다. 직원들의 스트레스 수치는 7%p 줄어들었고, 리더십, 헌신, 동기부여 등으로 측정한 생산성 지표는 평균 20%p가량 높아졌다.
이번 실험을 진행한 오클랜드 기술대학의 자로드 하르 교수는 “직원들은 상황을 재설계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받았다”면서 다른 기업들이 모델로 삼을 수 있는 혁신적인 근무방식이라고 강조했다.
반스 CEO는 “왜 이제껏 임금을 지급할 때 생산량보다 일하는 시간에 연연했을까요?라고 되물을 정도로 만족감을 나타냈다. 반스 CEO는 이사회에 주 4일제를 정식 제도로 채택할 것을 건의한 상태다.
근무시간을 단축하는 움직임은 이웃나라 호주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하루 5시간 근무제를 도입하는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다. 주 25시간 근무다.
금융회사 콜린스SBA의 직원 30여 명은 9시에 출근해 2시에 퇴근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조너선 엘리엇 사장이 암에 걸린 아내를 돌보기 위해 근무시간을 줄였음에도 업무 성과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뒤 도입한 정책이라고 현지매체 뉴스닷컴은 소개했다.
단축 근무에 맞춰 불필요한 회의를 줄였고 이메일 대신 페이스북과 비슷한 간편 메시징 시스템을 도입했다.
콜린스SBA도 근로시간 단축 후 긍정적 결과를 보고했다. 클라우디아 파슨스 콜린스SBA 이사는 뉴스닷컴 인터뷰에서 “사내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면서 직원들의 동기 부여가 확실해지고 병가도 대폭 줄었다“고 말했다. 근무시간이 줄었지만 직원들의 업무 소화량은 그대로 유지됐다고 강조했다.
파슨스 이사는 “환한 대낮에 문 밖에서 여유를 즐기면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자유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는 세계적으로 워라밸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는 상황과 맞물린다. 지금까지 워라밸이 개인적 이슈로 취급됐다면 돈보다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가 경제의 중심축으로 자리잡으면서 사회적 이슈로 확장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근무시간 단축을 통한 워라밸 높이기의 트렌드 세터는 독일이다. 독일의 경우 2017년 기준으로 연간 평균 근무시간이 1363시간으로 OECD 중에서 가장 낮았다. 우리나라는 2024시간으로 독일의 1960년대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독일 최대 노동조합인 IG 메탈은 올초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경우 최대 2년 동안 근무시간을 주 35시간에서 28시간까지 줄일 수 있는 권리를 얻어내기도 했다. 경기가 호황인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 국한되는 제도이긴 하지만 IG 메탈이 독일 경제에서 각종 선례를 만들어왔다는 것을 감안할 때 확대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
다만 근로시간 단축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콜린스SBA의 경우 5시간 근무를 도입한 뒤 2명이 퇴사했다. 근로시간이 단축되면서 같은 업무를 두고도 직원들 간의 성과 차이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기 때문.
불가피하게 근로시간이 중요한 업종도 있다. 레스토랑, 카페, 상점 등이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 문을 닫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문가들은 업종에 맞춘 유연한 접근과 세심한 준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