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방향성을 상실하고 표류하고 있다. 경제정책은 시장 반응도 미지근한 데다 청와대와 정치권 눈치까지 보면서 누더기가 된 상태다.
정부는 청와대와 의견이 맞지 않으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분위기다. 지난 18일 내놓은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은 청와대와 사전 조율이 어그러지면서 ‘부실한 대책’이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도규상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올해부터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은 통상적으로 정책 줄기 정도만 제시하는 수준으로 갈 것”이라며 “이에 따라 기본적인 정책방향과 저소득층 대책 등 주요 골자만 담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가 경제정책방향을 줄기 정도만 제시한다는 얘기는 사전에 어디에서도 논의된 바 없다. 청와대와 정치권 조율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급하게 발표했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한 대목이다.
정부 안팎에서는 청와대에 주어진 권한이 커지다 보니 ‘관료 패싱’이 잦아진 것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 기를 살려서 정책 숨통을 터줘야 하는데, 오히려 청와대가 칼자루를 쥐고 압박하면서 관료들은 힘을 낼 수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정부 관료들은 문 정부 들어 청와대 입김이 더 세졌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 한 고위관계자는 “정책을 수립해 청와대에 가져가도 되돌아오는 일이 다반사다. (청와대에서) 구체적 방향도 없이 발상의 전환을 정부에 요구하는데 답답할 노릇”이라며 “정부는 시일에 맞춰 정책 발표를 준비해야 한다. 이번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역시 7월도 늦은 감이 있다. 청와대와 조율이 제대로 안 되면서 발표 자료가 충실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정부는 진퇴양난이다. 청와대뿐만 아니라 정치권까지 정책에 개입하면서 정부 고유의 색깔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사공’이 많아져 기획재정부는 경제 컨트롤타워 기능마저 상실했다.
정부 권한 축소는 박근혜 정부 때부터 조짐을 보였다. 박 정부 당시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제 목소리 한번 내지 못한 채 ‘영혼 없는 경제 컨트롤타워’라는 지적을 받았다. 모든 지시가 청와대로부터 내려왔다. 장관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낼 기회조차 없었다.
정권이 바뀌고 소통을 강조하는 문 정부는 더 심하다. 적폐 청산 대상을 공무원까지 확대하면서 변화를 주문하고 있다. 공직사회는 힘없는 장관과 정책적 압박으로 인해 내부적으로 상당히 경직된 상태다.
전직 정부부처 한 장관은 “정부 정책이 힘을 받기 위해서는 장관들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돼야 하는데 최근에는 소신과 철학이 실종된 모양새”라며 “정치권은 정부를 견제하는 기관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만 청와대까지 정부를 압박하면 정부가 설 자리를 잃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청와대가 독자적으로 움직이면 시장에 혼선만 초래하게 된다”며 “청와대에서 정부 기를 살릴 수 있을 만한 당근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