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사회는 새 정부 출범 초기부터 혼란스럽다. 공무원 조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정치인과 학계 출신 장관이 국정철학을 제대로 파악하고 정책을 수립‧집행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다.
관료 출신 장관이 적다 보니 정책 구상도 쉽지 않은 분위기다. 관료들 의견이 무시되는 이른바 ‘관료패싱’이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동연 부총리‧최종구 금융위원장 영(令) 안서는 관료들
문 정부 1기 내각 장관급 26명 가운데 관료 출신은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행시 26회), 최종구 금융위원장(행시 25회), 홍남기 국무조정실장(행시 29회) 등 세명뿐이다. 전체 비중을 봐도 11.5%에 불과하다.
세명 모두 경제컨트롤타워의 중심에 있다고 하지만 영이 서지 않는다. 김 부총리가 주재하는 경제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하는 장관들 대부분이 정치인과 학계 출신이라는 점에서 믿고 맡길만한 관료 출신 장관이 없다는 점도 아킬레스건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 기수 후배인 김 부총리 이외에 터놓고 의견을 조율할 만한 관료 출신은 보이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시작 초기부터 최 위원장이 주도적으로 정책을 밀고 나갈 힘이 부족한 모양새다.
공직사회에서 관료패싱 우려는 문 정부 출범 초기부터 제기됐다. 주요 핵심 정책에 대해 정부의 의견이 묵살되는 사태가 지속됐던 것이다. 실제 이달 초 세법개정안의 경우 여당의 ‘부자증세’ 발언 직후, 분위기는 경제부총리 의도와 다른 양상으로 흘렀다.
당시 김 부총리는 취임 초기부터 법인세와 소득세 명목세율 인상은 없다고 못박았지만, 결국 정치적 논리에 밀려 백기를 들었다.
김 부총리는 지난 2일 세법개정안 발표 후 “경제에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 시장에 일관되고 예측 가능한 메시지를 주지 못한 점은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인사청문회 때부터 계속해서 명목세율 인상은 현재 단계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다.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고 민감한 사안이어서 신중하게 접근을 할 생각이었다”며 “당에서 꾸준히 얘기가 있었고, 청와대가 여러번 얘기하며 상당히 빠른 속도로 명목세율 인상이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관피아 청산은 좋지만…상처만 남을 공직사회
관료사회의 적폐에 따른 비정상을 정상화시킨다는 문 정부의 취지에 이견을 제기하는 공무원은 없다. 다만 관피아(관료+마피아)를 뿌리뽑겠다며 조직 시스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정치인과 교수를 수장으로 내정한 것은 또 다른 불만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문 정부 1기 내각에서 학계 출신은 9명, 정치인 출신은 6명이다. 장관급 인사의 절반을 차지하는 셈이다. 공직사회가 우려하는 부분은 이들 15명 장관들의 임기다.
장관이 됐으니 자신의 철학을 펼치는 것은 중요하지만, 기존 정책까지 뒤엎으며 조직을 개혁하겠다는 의지가 공무원들에게는 달갑지 않다. 특히 학계 출신 장관들은 자신의 전공분야를 정책에 접목시키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
백운규 산업통상부 장관은 에너지에 집착하고 있다. 학계 출신은 아니지만, 비관료 출신인 김은경 환경부 장관은 자신의 전공인 지속가능발전에 목을 매고 있다. 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 등도 이론적 정책을 실현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학계 출신 장관들의 또 다른 특징은 사소한 부분까지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한다는 것이다. 실‧국장들 직언도 무시당하기 일쑤다. 주요 일정이나 정책 발표도 수시로 변한다. 워낙 유동성이 많다 보니 간부급 공무원 사이에서는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난감하다.
정치인 출신 장관들은 임기가 짧다는 점에서 장단점이 존재한다. 정치인 특유의 조직 장악력으로 인사 회전은 상당히 빠르다. 주로 외부 일정이 많아 차관에게 조직을 전담하게 하는 형태가 많아 오히려 더 안정적이다.
다만 정치인 출신은 2년 이상 임기를 늘리지 않는다. 당장 내년 6월 지방선거가 있어 현재 6명의 정치인 출신 장관 중 대부분이 다시 정치권으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관료의 적폐가 크다고 하지만, 공직사회 개혁을 1~2년 임기의 장관들에게 맡긴다는 것 자체가 무리수다. 장관이 바뀌면 새로운 기조에 다시 맞춰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현재 관료들은 승진해도 갈 곳이 없는 처지”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