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미국의 수입산 자동차 폭탄관세 조치가 전 세계에서 연간 3000억 달러(약 334조 원)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대한 보복을 촉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일(현지시간) 유럽위원회(EC)가 지난달 29일 미국 상무부에 냈다는 관련 문서를 입수해 이같이 보도했다. 그러면서 EC가 트럼프의 수입차 폭탄관세 위협에 구체적으로 대응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미국에 대한 전 세계적 보복과 전면적인 무역전쟁을 경고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2940억 달러는 지난해 미국 상품 수출액의 19%에 이른다. FT는 미국이 수입하는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규모(지난해 약 3300억 달러)와 맞먹는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입산 철강·알루미늄에 이어 수입차에도 25%의 추가 관세를 물릴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 미국 상무부도 지난 5월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수입 승용차와 부품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철강·알루미늄 관세의 근거가 된 '무역확장법 232조'는 국가안보위협을 명분으로 한 수입 제한을 정당화한다. 당시 상무부 관리들은 조사 결과에 따라 수입차와 부품에 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EU가 미국의 수입산 철강·알루미늄 폭탄관세 조치에 대한 보복을 거두지 않으면, EU에서 수출하는 모든 자동차에 20%의 추가 관세를 물릴 것이라고 위협했다. 지난달 22일은 EU가 철강·알루미늄 관세에 맞서 미국산 땅콩버터, 위스키, 할리데이비슨의 오토바이 등을 표적으로 한 보복관세를 실행한 날이다.
트럼프의 경고에 미국시장 비중이 큰 독일 폭스바겐, BMW 등의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도 EU에 각을 세웠다. 그는 폭스뉴스와 회견에서 무역과 관련해서는 EU가 중국만큼 나쁘다고 비판했다. 그는 "EU는 단지 더 작을 뿐, 중국만큼 나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자동차를 거론하면서 "그들이 우리에게 하는 일은 끔찍하다"고 강조했다.
EC는 미국이 수입차와 부품이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지 여부를 조사하는 게 세계 경제를 전면적인 무역전쟁으로 몰아넣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400만 개가 넘는 일자리를 보유한 미국 자동차 부문의 고용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일방적인 무역정책은 국제법을 무시한 행위로 국제사회에서 정당화할 수 없고, 미국의 명성에도 해를 입힐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행정부의 수입차 폭탄관세 부과 움직임은 외국 업체들은 물론 국내에서도 반발을 사고 있다. 미국 간판 자동차회사인 제너럴모터스(GM)는 지난달 29일 미국 상무부에 보낸 서한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수입차 관세가 자동차 가격을 수천 달러 높이고, 자사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미국의 일자리 손실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자동차 및 부품 공급망이 전 세계에 얽혀 있는 만큼 미국 업체도 피해를 면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BMW도 트럼프 행정부가 자동차 수입 관세를 강행하면 미국 내 투자와 일자리를 줄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BMW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최대 공장을 뒀다. 이곳에서 생산한 자동차의 70%를 수출한다.
GM 등 미국 자동차 회사와 BMW 등 미국에 진출한 해외 업체들의 대표 조직인 미국 자동차제조업연맹(AAM)은 최근 미국 상무부에 보낸 서한에서 자동차 수입관세 25%가 부과되면, 수입차 가격이 대당 평균 5800달러 오를 것이라고 밝혔다.
EC는 문건에서 유럽 자동차 회사들이 미국 내 자동차 생산의 25%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며 사우스캐롤라이나, 앨라배마, 미시시피, 테네시 등 미국 전역에 걸쳐 공장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EC가 거론한 지역은 모두 공화당의 텃밭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수입차 관세가 자칫 올 11월 중간선거, 2020년 대선에 역풍을 일으킬 수 있음을 경고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