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1주년을 맞은 LG그룹은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에서 구자경 LG 명예회장을 거쳐 구본무 회장으로 이어져왔다.
구인회 회장이 1947년 자본금 300만원으로 직원 20명과 함께 일으킨 락희화학공업사는 구자경 회장 시대에 한국 대표 대기업으로 발돋움했다. 구본무 회장을 거치면서 현재 국내외 23만명의 직원과 연매출 160조원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만들어진 글로벌 LG
LG그룹은 1947년 구인회 창업회장이 부산 서대신동에 락희화학공업사를 설립하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화장품 제조사업을 하던 락희화학공업사는 국내 화학 산업을 선도했으며 연이어 전자산업을 개척했다.
LG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최초' 발명품은 한국 산업의 역사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화장품에 이어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했으며 플라스틱 공업이 성장 한계에 놓이자 1958년 금성사를 설립해 전자산업에도 도전했다.
금성사는 국산 라디오와 전화기, 흑백TV, 세탁기 등을 국내 최초로 개발하며 성장을 거듭했다. 2004년에는 세계 최초로 42인치 TFT LCD를 개발하고 2006년에는 2600mAh급 리튬이온 이차전지를 처음으로 생산했다. 올레드(OLED)TV도 LG가 보유한 '세계 최초' 목록 중 하나다. 또한 플렉서블 와이어와 배터리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등 산업 역사와 함께 성장했다.
인재와 R&D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구 회장은 미래 자동차산업을 위한 각종 부품과 솔루션 개발 사업, 친환경 에너지 생산ㆍ저장ㆍ관리 솔루션 사업에 씨를 뿌려놓기도 했다.
최근 서울 강서구 마곡산업단지에 문을 연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 'LG사이언스 파크'는 R&D와 혁신을 통한 1등 LG를 향한 구 회장의 의지가 담겨 있다.
◆구자경 2대 회장, '내실 있는 안정 성장'으로 LG 초석 닦다
1970년대부터 LG는 글로벌 기업으로 커나갈 초석을 닦았다 구자경 명예회장이 1970년 1월 취임하면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구자경 회장은 '내실 있는 안정 성장'을 내걸고, 화학산업과 전자산업을 양대 축으로 석유화학, 정밀화학, 반도체 등 첨단분야와 건설, 증권 등 서비스산업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나갔다.
1970년대를 지나오면서 LG는 10개 회사를 인수하거나 설립했으며 공장도 19개를 세웠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는 대대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LG는 1983년 그룹 이름을 럭키그룹에서 럭키금성그룹으로 변경했으며 이후 석유화학산업 일괄체제를 구축하고 인공지능 전자제품, 반도체를 개발하며 세계화를 선도했다는 평가다.
◆구본무 3대 회장, 'LG' 시대 열다
1995년 1월에는 구본무 3대 회장이 취임하면서 'LG'라는 사명도 이때 도입했다. 이후 LG는 '정도 경영'을 내세워 이동통신과 LCD, 반도체, 에너지, 유통업에 도전해 성과를 거뒀다.
1997년에는 한국을 휩쓴 IMF사태로 LG도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반도체와 카드, 증권 등 LG의 성장의 한 축이었던 계열사를 매각하는 진통을 겪었다.
위기를 극복한 후에는 2003년, 국내 대기업 최초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가장 빠르게 선진 경영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LS그룹과 GS그룹으로 계열 분리를 단행하고 창업 이래 이어진 구-허 동업 경영 체제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