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화웨이가 세계 최초로 유럽연합(EU)의 5G 통신장비 상용화 인증을 획득했다.
미국이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스파이'로 지목한 기업에 유럽 시장 진출의 길을 터준 것이다.
17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등 주요 언론에 따르면 전날 화웨이의 5G 통신장비가 글로벌 인증기관인 TÜV SÜD로부터 CE 인증을 받았다.
CE 인증은 EU 공통 규격 제도로 유럽 지역에 제품을 수출할 때 반드시 획득해야 한다.
5G 통신장비에 대해 CE 인증을 획득한 기업은 지금까지 화웨이가 유일하다. 오는 2025년 7914억 달러(약 850조원) 규모로 성장할 글로벌 5G 시장의 주요 거점 중 한 곳인 유럽에서 우위를 점하게 된 셈이다.
화웨이의 전략·마케팅 담당 최고 책임자인 쉬원웨이(徐文偉)는 "2025년이 되면 5G 통신 이용자 수가 11억명으로 늘어나고 2억대의 차량에 5G 기술이 적용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5G 통신장비 시장을 놓고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화웨이가 유럽에 본사를 둔 노키아와 에릭슨 등까지 제치고 최초로 EU 인증을 획득한 것은 다소 의외다.
특히 화웨이는 미국이 '중국 정부의 스파이'로 지목한 이후 서구권 국가들로부터 각종 불이익을 받았던 기업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국가안보국(NSA), 국가정보국(DNI), 연방수사국(FBI)을 포함한 6개 정보기관 수장은 지난 2월 화웨이 등 중국산 통신장비를 사용할 경우 도·감청 우려가 있다고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미국 정치권은 올해 초 화웨이와 미국 통신업체인 AT&T 간의 스마트폰 판매 계약을 무산시켰다.
또 최근에는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중국 기업의 IT 장비·기기를 도입하는 업체에 대한 보조금 제한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EU가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및 일방주의에 제동을 걸기 위해 중국과 손을 잡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트럼트 대통령을 향해 "보호무역주의는 해답이 아니며 자유무역을 지켜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던지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0일 보아오포럼 기조연설에서 금융·자동차 등 분야의 추가 개방을 선언하며 자유주역의 수호자를 자임하고 나섰다.
포럼에 참석했던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와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오스트리아 대통령 등 유럽 정치 지도자들도 일제히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한편 이날 미국 상무부는 또다른 중국 통신장비 제조업체인 ZTE에 향후 7년 동안 미국 기업과의 거래를 중단시키는 내용의 제재를 가했다.
별도의 승인 절차 없이 북한·이란과 거래했다는 이유지만 중국의 첨단산업 발전을 견제하고 무역전쟁을 확대하기 위한 조치라는 지적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