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높은 변동성에도 불구하고 지정학적 위기와 수급 균형에 힘입어 우상향 추세를 그리고 있다. 헤지펀드들의 유가 상승 베팅도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오전 아시아 시장에서 글로벌 벤치마크인 브렌트유 가격은 전일 대비 0.3%가량 오른 배럴당 71.75달러를 가리키고 있다.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도 0.5% 오른 배럴당 66.58달러에 거래 중이다.
특히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용 의혹과 관련, 미국을 주도로 한 서방의 시리아 공격과 이에 맞선 러시아의 강력 대응 위협으로 국제유가는 지난주에만 8% 이상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전 세계 원유 공급에서 시리아의 비중은 미미하지만 원유 최대 매장지인 중동의 정세가 불안해지면 원유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기간 유가 상승에 대한 투기세력의 베팅도 급증했다. 16일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지난주 브렌트유 선물에 대한 헤지펀드 투자는 신기록을 세웠다.
지난 10일까지 한 주간 브렌트유 선물의 순 롱 포지션(유가 상승 베팅에서 하락 베팅을 차감한 것)은 63만2454계약으로, ICE선물유럽(ICE Futures Europe)이 2011년 1월 자료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롱 포지션은 66만5130계약으로 직전주 대비 3.5% 증가했고, 쇼트 포지션은 직전주 대비 5.9% 늘어 3만2676계약이었다.
다만 중동의 지정학적 갈등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WTI의 경우 헤지펀드의 상승 베팅은 소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시리아 위기 외에도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이행,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석유회사 아람코 상장 계획, 서방의 대이란 경제제재 부활 전망, 베네수엘라 산유량 감소는 유가 상승을 부채질할 수 있는 요인이라고 말한다.
OPEC의 경우 3월 산유량이 3214만 배럴로 11개월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바키트 알라시디 쿠웨이트 석유장관은 올해로 끝나는 OPEC 감산 합의를 내년까지 연장하는 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경제개혁의 일환으로 국영석유회사 아람코 지분의 일부 상장을 앞두고 있는 것도 유가 상승 전망을 밝힌다. 사우디는 아람코의 몸값을 2조 달러로 평가받겠다는 계획이며 이를 위해 유가의 적정선을 배럴당 80달러로 제시해왔다.
또한 이란에 강경 입장을 취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5월 12일 갱신 예정인 이란 핵협상을 파기하고 대이란 경제 제재를 다시 부과할 가능성도 있다. CNBC에 따르면 씨티그룹은 이란의 핵협상 파기가 현실화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시장에서 일일 100만 배럴에 달하는 이란산 원유 공급이 끊길 수 있다고 말했다.
최악의 경제난에 빠진 베네수엘라도 원유 생산이 급격히 감소하는 추세다. 베네수엘라는 현재 일일 150만 배럴을 생산하고 있는데, 한 해 전에 비해 54만 배럴이나 줄어든 것이다. 씨티그룹은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경제 제재를 추가할 수 있다면서, 이는 베네수엘라의 원유 수송을 제한하고 금융부문에 타격을 입힐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여전히 유가 상승 전망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바클레이스는 이란의 핵협상이 파기되더라도 파장이 크지 않을 것이며 베네수엘라산 원유 공급 감소는 이미 유가에 반영됐다면서, 하반기에는 유가가 최근 고점 대비 10% 이상 떨어지는 조정장에 돌입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