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장 “나쁜 건축은 나쁜 삶..."

2018-04-03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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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제32대 회장 취임...“건축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 재정립”

3일 서울 서초구 건축사회관에서 만난 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 회장이 삶에 영향을 미치는 건축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나쁜 건축은 결국 그 집에서 사는 우리들에게 고스란히 피해를 주게 됩니다.”

3일 서울 서초구 건축사회관에서 만난 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 회장은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건축이 우리의 삶에 영향을 준다고 강조했다.
◆“의사나 변호사 못지않게 삶에 영향을 미치는 건축사”

지난달 5일 제32대 대한건축사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석 회장은 협회 역사상 두 번째로 치러진 직선제 선거에서 회원 9739명 가운데 81.21%가 참가해 66.47%의 지지를 받으며 당선됐다. 1978년 ‘정림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일하기 시작해 현재 ‘태건축설계 건축사사무소’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석 회장은 3년의 임기의 첫발을 이제 막 뗐다.

석 회장은 올 1년을 ‘건축사’라는 전문가에 대한 정의를 다시 세우는 한 해로 보낼 계획이다. 그는 “건축사를 설계만 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건 우리 건축사 스스로도 마찬가지”라며 “하지만 건축사는 의사나 변호사 못지않은 전문가 집단이다. 그들이 하는 일만큼 건축사가 하는 일도 국민들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그 예가 경북 포항시와 경주시에서 일어났던 지진 피해다. 석 회장은 “지진에 의한 피해는 붕괴 피해보다는 마감재가 떨어졌다든가 전기 배선에서 누전이 일어나는 등 2차 피해가 더 크다. 하지만 우리는 오로지 붕괴라는 측면에서 내진 설계를 강화하면 모든 지진이 해결되는 것처럼 얘기한다”며 “과연 내진 설계만 강화하면 되는 것인지, 모든 지역에 동일한 규정을 적용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등에 대해 건축사들도 적극적으로 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건축의 세 가지 요소는 구조와 기능과 미(美)다. 구조만 따로 볼 수 없는 것이 건축인데, 지진이 발생하면 구조 기술적인 측면에서만 성능 강화를 얘기한다”며 “앞으로 협회 차원에서 사회 현상이나 이슈에 대해서 건축적으로 해석하고, 그에 따른 대안을 제시하는 등 국가 정책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여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진은 단적인 예일 뿐 우리의 삶에서 건축과 연관되지 않은 것은 없다는 게 석 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우리가 숨 쉬고 생활하는 공간은 모두 건물 안이다. 부실하게 건물을 설계하고 지음으로써 피해를 입는 건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라며 “그로 인한 유지 관리비 등 사회적 비용도 너무 크다”고 말했다.

◆ 건축은 공공재··· “최소한의 거주 조건 충족해야”

석 회장은 현재 건물을 짓는 과정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일반인들이 집을 짓고자 할 땐 당연히 건축사한테 먼저 가야 하는데, 우리는 지금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먼저 가고 있다”며 “아프면 먼저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은 뒤 약국에 가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집을 지을 때 병원이 아닌 약국에 먼저 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과정이 왜곡돼 있다 보니 삶에 영향을 미치는 건축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경제적 가치만 따지는 건축을 하게 된다”며 “건축사들이 단순히 건축주들의 필요에 의해 전문지식을 제공해주는 수준에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도 개념을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석 회장이 생각하는 건축은 ‘공공재’다. 석 회장은 “건축을 문화적인 측면에서 볼 수도 있지만, 최소한의 거주 조건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문화를 논하기는 힘들다”며 “일반 국민들의 주거 시설은 바닥에 있고 건축 문화만 발전하면 그것은 전체적인 건축의 발전이라고 볼 수 없다. 훌륭한 건축 문화는 알리되 도심 내 다가구주택 등 전체적인 주거 환경에 대한 설계를 고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더불어 그는 “건축에 대해 공학이나 예술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정의를 내리지만, 사실 건축은 우리의 삶을 다루는 생활 그 자체라고 본다”며 “어마어마한 첨단 건물 바로 옆에 빈민촌이 있는 개발도상국 같은 도시가 돼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3일 서울 서초구 건축사회관에서 만난 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 회장이 삶의 기본권을 지키는 소규모 건축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 “유명 건축물보다는 ‘삶’ 보여주는 소규모 주택 들여다보고 싶어”

현재 대한건축사협회의 가장 큰 현안은 감리제도 개선이다. 석 회장은 "오는 6월부터 건설업자가 시공해야 하는 건축물 범위가 연면적 200㎡를 초과하는 건축물로 확대됨에 따라 허가권자가 감리자를 지정하는 범위가 200㎡ 이하로 축소된다"며 "감리자가 건축주에 예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해 건축물의 성능과 안전을 확보하는 감리제도가 지난해 시행됐는데 자칫 무위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이 제도가 유명무실해지지 않도록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석 회장이 소규모 건물로 눈을 돌린 지는 30년이 넘는다. 석 회장은 “1970~1980년대 일을 할 땐 건설업계가 호황기였다. 한창 개발할 때였기 때문에 뒤를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며 “하지만 이후 건축사로서 사회적 의무를 생각하게 됐다. 역사에 길이 남을 건물을 설계해 유명한 건축가로 남는 것보다는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1986년 30살의 나이로 태건축설계 건축사사무소를 개업한 그는 소형주택 브랜드인 ‘마이지오’를 선보이기도 했다. 앞서 2009년부터 서울특별시건축사회 이사로 일한 석 회장은 국내 최초로 서울시로부터 소규모 건축물 감리 운영을 위임받기도 했다.

석 회장은 “우리 회원들 중 60~70%가 소형 주거 시설을 설계하는 건축사들”이라며 “층간 소음과 주차 문제도 모두 주거에 대한 불편함에서 비롯된다. 회원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고, 그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가 그 집에 사는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게 협회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제 막 임기를 시작한 석 회장은 올해는 내부 회원들은 물론 외부 유관 단체와 소통을 강화하는 한 해로 보내기로 했다. 내년부터는 사회적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면서 건축사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내외부에서 관계가 개선돼야 현안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열릴 건축사대회는 지금까지 진행된 모습과 다른 대회로 꾸며볼 생각”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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