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5월, 상해임시정부는 교통부 산하에 임시교통국을 설치했다. 교통국의 근간(根幹)은 아일랜드인 조지 쇼의 이륭양행으로, 이어서 압록강변 8개 군과 함경남도, 평양, 황해도, 경성에 임시교통사무국 거점이 마련되었다. 교통국의 임무는 초기에는 자금조달이었으나, 1920년 3월부터 통신전달 및 적정탐사에 주력하게 된다.
또한, 임시정부는 국내외 동포들과 소통 및 독립에 대비한 지방자치의 전 단계로서 연통제와 거류민단제를 실시했다. 1919년 4월의 ‘임시정부령 제2호’는 면마다 자치제를 조직하여 행정․사법 및 경찰위원을 선출해 국토 회복이 완성될 때까지 질서유지의 임무를 다할 것을 지시했다(<한국독립운동사>, 역사비평).
“세도가나 집권자들의 압제를 받으며 억눌려 지내오기만 했던 사람이 자신에게 해를 끼쳤다면 모를까 이렇다 할 혜택이나 은덕을 베풀어 주지 못했던 조국이 이미 숨통을 끊긴 마당에도 그 조국을 찾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일제에 항거하는 모습을 볼 때 진정한 애국자가 따로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장강일기>, p60)
연통제는 국내 애국자들의 헌신으로 운영되었다. 수당의 국내 잠입을 도운 이세창 씨가 바로 그런 분이다. 훗날 왜경에 체포돼 투옥, 끝내 종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된 이세창 씨 같은 어른이야말로 진정한 독립의 주역이자, 우리의 현대사가 반드시 찾아내야 할 이름 없는 영웅(Unsung Hero)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