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익의 인더스토리] 가족 붕괴 막는 삼시세끼 서비스

2018-03-11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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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은 철저한 분업시스템


가족은 기능적으로 보면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분업 시스템이다. 남성은 사냥을 해 먹을 것을 해결하고, 여성은 자식을 낳고 기른다. 성이나 사랑을 매개로 한 필연적 결과물처럼 보이지만 가족은 철저한 분업의 원칙으로 유지돼 왔다. 남성의 육체적 힘과 여성의 생식 능력은 서로 대체 불가능한 것이어서 이에 대한 등가 교환을 골자로 한 가족 내 분업 시스템은 공고한 것처럼 보였다.

근대화와 함께 전통적 분업 관계는 서서히 붕괴된다. 밥벌이 방식이 사냥이나 농사 등 남성의 근력을 바탕으로 한 육체노동에서 정신노동으로 급격히 전환되면서다. 대체 불가능했던 남성의 능력은 여성의 정신노동으로 대체 가능해진 반면, 여성의 생식 능력은 여전히 대체 불가능하다. 이 같은 미스 매칭으로 공고했던 가족의 분업 시스템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여성은 고단한 밥벌이 활동에 참여하는데 남성은 육아 등 집안일에 여전히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선진국 중 한국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0~14세 아이를 둔 부부의 맞벌이 비중은 2017년 기준 우리나라의 경우 29.4%다. 상당수의 여성이 밥벌이 전선에 나간다는 말이다. 하지만 남성의 가사 분담률은 16.5%에 불과하다. 남성은 하루 45분 정도를 가사에 쓴다. 밥벌이와 출산을 골자로 한 분업시스템이 깨졌는데, 여성이 밥벌이를 하는 만큼 남자는 가사노동을 하지 않으니 가족의 분업 시스템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힘든 불안정한 상태에 빠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맞벌이 비중과 남성의 가사 분담률 평균치는 둘 다 한국의 두 배 정도다.

이 같은 불균형은 여성 고유의 역할인 출산의 감소로 이어진다. 남성이 가사노동을 하지 않는 만큼 여성이 자신이 지불할 비용을 줄임으로써 분업의 원칙인 등가 교환 상태로 수렴하는 것이다. 아니면 이혼을 통해 분업 시스템 자체를 깨는 파국을 택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실제 우리나라 출산율과 이혼율은 각각 OECD 최저·최고 수준이다.

최근 이른바 삼시세끼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거상품 분양이 주택시장의 트렌드로 급부상하고 있다. 아파트나 주상복합, 오피스텔에 골프장 클럽하우스 같은 라운지식 식사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이다. 엠디엠이 이달 광교신도시에 선보이는 '광교 더샵 레이크시티'에는 아침·점심·저녁 식사를 제공하는 클럽라운지가 조성된다. 현대건설은 최근 현대그린푸드, 인바디와 각각 업무협약(MOU)을 맺고 '디에이치 자이 개포'에 거주고객 전용 건강식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단순히 보면 분양률을 높이기 위한 차별화된 수많은 부대 서비스 중 하나 같아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삼시세끼 서비스는 불균형 상태에 빠진 가족 내 분업 시스템을 보완해줄 혁신적인 서비스가 될 수 있다. 광교 더샵 레이크시티의 경우 한 끼에 6000원 안팎에서 가성비 높은 식단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큰 경제적 부담이 없이 맞벌이 부부들이 식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여성이 하루 세 끼 밥하는 시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건 깨져버린 가족 내 분업 시스템이 새로운 균형점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남성의 가사 분담 시간을 늘리는 대신 여성의 가사 시간을 줄여주는 것이 더 쉬운 해결책일 수도 있다.

물론 디벨로퍼들이 이 같은 서비스를 구상한 게 위와 같이 복잡다난한 사회적 현상을 분석한 결과는 아닐 수 있다. 이 같은 사회현상이 녹아들어 하나의 수요로 표출되고 디벨로퍼들은 직관적으로 이 같은 수요를 읽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성공한 디벨로퍼들의 직관에는 수많은 논리와 통계들이 내포돼 있는 셈이다.

디벨로퍼들이 개발하는 주거상품이 수렵과 채집, 농경사회를 지나 현대화 과정에서 급격히 붕괴되는 가족 시스템을 보완해 주는 단계로 진화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 같은 관점에서 보면 미래의 주거 서비스는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을 대체해주는 쪽으로 다양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 수요가 지속적으로 공급을 촉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가사라고 하는 청소와 빨레, 육아, 공과금 납부 등이다. 이 같은 일을 대신해주는 도우미 서비스는 그동안 일반 가정엔 상당한 부담이었다. 하지만 공동주택에서 납득할 만한 가격에 이러한 서비스가 제공된다면 아내는 남편에게 당당히 요구할 것이다. 예컨대 이런 말이다. “래미안 도우미 서비스 이용할래. 나도 직장생활하는데 왜 밥하고 빨래까지 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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