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장호 칼럼] 농와지희(弄瓦之喜)와 우먼파워

2018-03-07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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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호칼럼]

 

[사진=박장호 초빙논설위원·서울대교수(산학)]



아들이 좋을까? 딸이 좋을까? 부부가 인연을 맺어 자식을 두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축복이지만 집안 대소사가 생기면 한번쯤 딸이냐 아들이냐에 대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 조상들은 아들을 선호하였던 것 같다. 농장지경(弄璋之慶)이라는 말이 있다. 농(弄)은 희롱할 농이고, 장(璋)은 구슬 장이니 구슬을 희롱하는 경사라는 뜻이다. 구슬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 무슨 경사일까? 남자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구슬치기나 공차기를 하면서 노는 경우가 많다. 이는 어쩌면 남성이라는 DNA의 발현일지도 모르는데, 아들을 낳았으니 집안의 경사라는 의미로 떠들썩한 잔칫상에서 득남한 사람에게 표하는 축하의 말이다.

딸을 얻었을 때는 농와지희(弄瓦之喜)라는 말을 썼다. 와(瓦)는 실패 와자이니 농와(弄瓦)는 실감개를 가지고 노는 것이고 이는 경사에는 한참 못 미치는 그저 즐거운 일이라는 표현으로  썼다. 이런 남아선호사상은 유교가 통치이념과 사회철학으로 자리를 확실히 잡은 조선 중기 이후에는 훨씬 심해져, 여자는 그저 밥짓기나 바느질이나 배워 집안의 허드렛일 정도를 해결하는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지금은 여성계의 활약으로 민법상 호주제도 폐지되고 상속도 유류분(遺留分)이라는 제도로 법적으로 보장받지만, 조선시대뿐 아니라 현대의 여명이 밝기 직전까지도 우리 어머니들은 시집 가서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을 하고도 칠거지악(七去之惡)에 걸려 시집에서는 쫓겨나고 친정으로는 돌아가지도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 속에서 세월을 보내야 했다.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르고, 결혼해서는 남편을 따르고, 남편과 사별하면 자식을 따른다는 삼종지도(三從之道)는 조선시대 여인상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라고 본다. 간혹 누구 대갓집의 외동딸로 금지옥엽(金枝玉葉)처럼 귀염 받고 자랐다는 표현들도 있으나 여식(女息)을 항렬자를 써서 제대로 족보에 올리는 것은 대단히 드문 일이었고, 시집 가서도 본명보다는 자기가 살다 온 지역의 이름을 붙여 파주댁·입촌댁 등 어느 지역 출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1930년대 일제시대에 모던 걸(modern girl)들이 나타났다. 일제가 서구문명을 받아들이면서 나타난 깔끔한 복장의 서구 매너를 갖춘 당시 신세대 모던 보이(modern boy)들을 따라 신세대 여성인 모던 걸들은 그 당시 사회상으로는 서양 옷차림을 한 신기한 사람들로 동네구경거리였고,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기에는 미미했었다. 신세대 여성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라는 나혜석도 말년을 불우하게 보내야만 했다. 1960년대 신세대 여성으로 대표될 수 있는 전혜린도 그의 천재성을 꽃피우기에는 토양이 형성되지 않았고 시대가 그를 품기에도 때가 성숙되지 않아 큰 반향은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 버린 면이 강하다.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일단 명문대에 입학하는 여학생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1981년도부터 적용된 졸업정원제로 대학의 입학정원이 2배로 늘어나고, 본고사에서 당락을 좌우하던 수학이 객관식으로 바뀌면서 여학생들의 합격이 늘었다고 분석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지금 중·고교에서 여학생과 남학생들의 성적분포를 보면 수학이 객관식이냐 주관식이냐보다는 여성들 스스로에 대한 자의식이 변했고 변한 이미지가 사회상으로 재정립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1970년대까지는 집안의 기둥인 잘난 오빠와 머리 좋은 동생 뒷바라지를 위해 나 한 몸은 공순이라 불려도 개의치 않고, 서울에서 식모살이를 해도 즐거운 여성상이었다. 대학을 간다 해도 현모양처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가정학과나 영문과, 불문과를 가장 선호하던 시절이었다. 여자가 법대나 의대를 가면 팔자가 세어져 고생한다는 통념은 사라졌고, 이제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경영학과나 법학과를 가고 MIT 박사를 염두에 두고 공대나 자연과학대에서 불을 밝히고 있는 여학생들이 많다.

정부부처에서도 신임 여성공무원의 비율은 50%에 가까워지고 있다. 판사나 검사의 임용비율도 비슷하게 가고 있으며, 금녀의 영역이었던 사관학교에서도 여성생도가 수석을 차지하는 경우도 자주 일어나고 있다. 언론이나 드라마 작가는 이미 여성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2000년대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미국에서 '미투(Me Too)'라는 울분에 찬 호소가 여성들의 작은 목소리로 시작되었다. 이 목소리들은 영국으로도 넘어가 추악한 것들을 몰아내고 있다. 우리나라에 와서는 지난 세월 여성들의 한이 서리가 되어 내리고 있는 듯하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언급되며, 문학에 관심 있는 대한민국 국민을 발표 24시간 전부터 스탠바이시키던 문단의 거두가 된서리를 맞고 있다. 삶에 지친 우리 내면을 순화시켜주고 화병을 풀어주던 유명 연극가와 연출가들의 망신살이 북악에서부터 한라까지 뻗쳐 나가고 있다. 내가 어머니의 아들임을 망각하고 여성을 한낱 말을 알아듣는 꽃, 해어화(解語花) 정도로 치부하던 사람들이 함부로 놀린 혀와 손이 지은 업(業)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여성들의 목소리는 과거와 같이 사막에서 외치는 작은 메아리가 아니라 이제는 사자후(獅子吼)가 되어 한국 사회의 곳곳을 흔들고 있다. 한국사회의 주류로 올라선 여성계의 영향력, 우먼파워(Woman Power)는 어디로 가야 할까? 자유의지로 세상을 헤쳐갈 이 땅의 딸, 본인들이 결정할 문제이지만 우리 공동체를 좀 더 업그레이드하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였으면 한다. 한국사회의 발전은 이제 우리 어머니와 딸들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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