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진칼럼] 김영철은 평창엔 들이지 말았어야

2018-02-25 12:47
  • 글자크기 설정



 

     [사진=강영진 초빙논설위원]


평창올림픽 폐막식 참석을 이유로 북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방남했다. 천안함 폭침 사건 등 많은 인명피해를 일으킨 대남 도발의 주역이라는 평가가 있던 인물이다. 당연히 그의 방남에 반대하는 강력한 움직임이 일었다. 그러나 정부는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논의하기 위해 불가피했다면서 국민들이 대승적 차원에서 이해해 달라고 강조하고 있다.

정부의 이 한마디로 논란이 가라앉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부가 천안함 사건 배후로 김영철을 지목한 지난 정부의 입장을 뒤집자 논란은 더욱 거세지는 분위기다.

평창올림픽 개막식에는 북한 로열패밀리 김여정이 참석하고 현송월이 이끄는 예술 공연단과 대규모 미녀 응원단을 파견한 북한은 '평창'을 '평양' 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대회 기간 중 이들의 존재감은 과거에 비해 크게 약했다. 오히려 남북 단일팀으로 구성된 여자 하키 팀이 모든 경기를 상당한 점수 차로 패하면서 자칫 역풍이 일지나 않을까 우려할 정도였다.

그보다는 의성 마늘 소녀들의 신들린 컬링 스톤 투구 솜씨에 온 국민이 열광하면서 평창올림픽이 평양에 의해 '스틸'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폐막식에 김영철이 참석하면서 평창올림픽은 다시 평양올림픽이 되고 있다. 개막식이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의미에서 평양올림픽이었다면 폐막식은 반대다. 온 나라가 격렬한 시위와 논쟁으로 뒤덮인 것이다.

반면 미국은 개막식에 김여정이 등장하면서 선전전에서 밀린 것을 의식이나 하듯 늘씬한 트럼프의 딸 이방카가 대표단장으로 방한했다. 아버지 대통령의 귀를 장악한 실세라는 이유로 백악관 선임보좌관에 불과한 이방카를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맞이하고 만찬을 베푸는 등 '칙사 대접'하고 있다.

이처럼 이번 평창올림픽을 전후해 벌어지는 사건들은 평소라면, 또 다른 나라에서라면 상상조차 힘든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그 배경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정부가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기 위해 큰 그림을 그렸고 그 그림에 따라 각종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뒤늦게 알려진 일이지만 서훈 국정원장이 주도하는 북한과의 비밀접촉이 상당 기간 진행되면서 이 모든 일의 실질적인 연출자가 서훈 원장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평생 국정원에서 대북 문제만을 담당해 온 국내 최고의 북한 전문가다. 국정원 출신 대북 전문가들은 대체로 북한 정세 정보에 해박한 정도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서훈 원장은 남북정상회담이나 고위급회담 등 전략적 차원의 남북접촉을 실무적으로, 지휘관으로서 책임진 경험이 풍부한 전략통이다.

서훈 원장이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기 위해 비밀접촉을 통해 북한 로열패밀리를 끌어들이고 비록 실패했지만 미국과 북·미 접촉을 주선하고 이번에 김영철을 불러들였다. 논란이 일 것이 너무도 뻔한 김영철을 왜 불러들였을까.

“한반도 평화를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이해해달라”는 것이 김영철 방남을 해명하는 정부 입장의 전부다. 그가 천안함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점이 확인된 적이 없다는 구차한 해명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정부가 곤혹스러워하면서 김영철 방남을 기정사실화한 데는 그만큼 그에게 거는 기대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김영철이 무언가 큰 보따리를 들고 오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북한의 통일전선부장이라는 직책은 물론 긴 세월 남북군사회담의 실무자와 대표자, 막후 실세로서 활동한 경력을 보면 김영철은 북한 내 최고의 대남 전문가다. 군사부문에서 대남 관계를 다뤄왔기에 김양건 등 과거의 통일전선부장과는 달리 강성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그러나 김영철이 서훈 원장의 카운터파트가 되는 건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북한에서 핵문제를 포함해 대남관계, 긴장해소 문제, 남북교류문제 등 모든 문제를 책임 있게 다룰 수 있는 사람으로 김영철이 유일하다는 평가가 있다. 비록 최종 결정은 김정은이 내리더라도 어떤 일을 하겠다고 발의하고 집행하는 건 그의 일이다. 우리 정부에서 서훈 원장도 같은 입장이다.

결국 서훈 원장과 마주 앉아서 남북관계의 모든 국면을 책임 있게 논의하는 것이 김영철의 방남 목적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매우 호의적으로 평가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오늘이라도 김영철과의 회담에서 깜짝 놀랄 만한 사건이 벌어진다면 호의적 평가는 유지될 수 있다.

다만 정부가 김영철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그가 천안함 사건의 주범이 아니라는 뉘앙스를 풍기면서까지 옹호하는 건 많이 아쉽다. 아무리 중요한 목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 국민들의 정서와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면서 해야 할 일이었을지 의문이다. 평창올림픽 폐막식이라는 잔치에 김영철을 초대한 것은 천안함 폭침 사건의 주범이라는 인식을 뒤집고 면죄부를 주기 위한 의도로 여겨진다. 앞으로 남북관계에서 서훈-김영철 라인이 중요하기에 불가피한 일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서훈-김영철 라인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국민들의 마음을 제대로 보듬지 못한 건 정부의 패착이다. 2014년 김영철이 판문점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는 점을 들어 김영철 방남을 결사반대하는 야당을 “내로남불”로 비꼬는 건 여자하키 선수들의 몇 년에 걸친 땀방울을 무시하고 “어차피 메달을 따지 못할 팀인데 뭐 어떠냐”는 발상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국민을 배려하지 않는 정부가 무슨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서훈-김영철 라인이 정말 중요한 인물이라면, 판문점에서 만나든 해외에서 만나든 얼마든지 대안이 있을 수 있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