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의 酒食雜記] 개 프레임

2018-01-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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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종권 칼럼니스트]


무심코 쓰는 말에도 ‘프레임의 덫’이 놓인 경우가 있다. '이판사판', '아사리판'이 그렇다. 이판사판은 원래 불가의 용어이다. 이판(理判)은 속세와 인연을 끊고 도를 닦는 일을 가리킨다. 사판(事判)은 절의 재물과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일을 말한다. 이판이 없으면 부처님의 고고한 가르침이 이어질 수 없고, 사판이 없으면 가람이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

아사리판 역시 불가에서 나왔다. 아사리는 인도의 소승불교에서 학승(學僧)의 행동을 바로잡아 주는 사범을 지칭한다. 아사리판은 제자들을 바르게 교육하는 덕이 높은 승려들의 모임이다.
그런데 이판사판은 막다른 데 이르러 어찌할 수 없는 지경이란 뜻으로 쓰인다. 아사리판은 규범과 질서를 지키지 않는 난잡한 행동, 또는 질서 없이 우글거리는 것을 일컫는다. 왜 본디의 뜻과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게 됐을까.

이는 조선시대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하는 숭유억불(崇儒抑佛) 사상으로부터 기인한 것으로 본다. 야단법석도 마찬가지다. 원래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야외의 자리를 뜻하는데, 이를 여럿이 모여 떠들썩하고 우왕좌왕하며 다투고 시비하는 모양을 빗대어 사용하지 않는가. 불교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언어 프레임이다.

개도 그렇다. 인간과 서로 의지하며 동반자가 된 지 1만5000년이다. 최근 화석 연구는 3만년쯤 전에 늑대와 다른 진화의 길에 들어선 것으로 추정한다. 이후 경계와 보호의 관계에서 먹거리의 교환과 심리적 위안까지 다양한 상호 관계로 발전해 왔다. 고양이가 무릎에 오르는 것은 따뜻하기 때문이지만, 개는 그저 주인이 좋아서 오른다고 한다.

그런데 ‘개-‘가 접두사로 붙으면 질이 떨어지거나, 쓸데없거나, 헛되거나, 흡사하지만 다르거나, 정도가 심하다는 뜻이 된다. 개살구, 개망나니가 대표적이다. 관용구도 그렇다. ‘개 발싸개 같다’는 보잘것없이 허름하고 빈약한 것을 이르고, ‘개 싸대듯이 한다’는 아무 데나 함부로 마구 쏘다닌다는 뜻이다.
속담과 격언에서도 개는 비하와 비아냥의 대상이다.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본다’는 말은 헛수고한 한심한 처지를 나타낸다. '개 꼬리 삼 년 두어도 황모 못 된다'는 말에는 본디 질이 나쁜 것은 시간이 지나도 좋아지지 않는다는 자조와 체념까지 배어 있다. ‘개 발에 편자’도 옷차림이나 지닌 물건 따위가 제격에 맞지 아니하다는 뜻이다.

한자 성어는 좀 다르다. 같은 개라도 견(犬)과 구(狗)에 차별이 있다. 견(犬)은 “사람이 큰 대(大)자로 뻗어 있고, 머리 옆에 술병이 놓인 모습을 형상화했다”는 우스개가 있다. 그래서일까. 술 취하면 개가 된다는 말 말이다. 하지만 본디의 상형문자는 점이 개의 머리 부분이다. 네모 형태의 머리 상형을 점으로 축약한 게 지금의 한자이다.

구(狗)는 표의문자이다. 짐승을 뜻하는 개사슴록변에 소리로 구별하는 구(句)가 붙었다. 상형과 표의의 차이일까. 견(犬)은 충견, 애완견처럼 먹지 않는 개이다. 구(狗)는 백구, 황구처럼 식용이다. 구탕(狗湯)이지, 견탕(犬湯)이라 하지 않는다. 날랜 토끼가 사라지고 나면 가마솥에 삶기는 개 역시 토사구팽(兎死狗烹)이다. 주인을 향해 짖는 배은망덕한 개는 새구폐주(塞狗吠主)이다. 여기저기 참견할 데 가리지 않고 끼다가 개 밥에 도토리 신세가 되는 것도 구반상실(狗飯橡實)이다.

아버지만 못한 아들은 호부견자(虎父犬子)이다. 개 발에 땀이 나듯 부지런한 사람을 견족발한(犬足發汗)이라 한다. 백성을 잘 다스려 도둑이 사라지면 개의 발바닥에 털이 난다. 견족생모(犬足生毛)이다. 개가 마른 뼈 갉아먹는다는 견설고골(犬齧枯骨)은 냉수 마시고 이 쑤시는 딸깍발이 선비를 떠올려서 그랬을까.

올해 무술(戊戌)년은 ‘황금 개띠’ 해라고 한다. 띠는 양력 1월 1일도, 음력 정월 초하루도 아닌 입춘을 기점으로 바뀐다. 올해는 2월 4일이다. 그런데도 벌써부터 개와 관련한 속담이 무성하다.

몇몇 헛소리를 일삼는 정치인을 향해서는 “미친 개에게는 몽둥이가 제격”이라 꾸짖는다. 이번에는 어디에 붙을지 좌고우면하는 철새들은 ‘상갓집 개’ 같다거나, “개가 똥을 끊겠느냐”고 비아냥댄다. 그래서 오뉴월에 파리가 꼬이지 않도록 대보름날에는 ‘상원의 개’처럼 굶기자고 한다. 아마도 6월 자치단체장 선거와 국회의원 재·보선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개 따라가면 측간 간다 했다. 동료도 잘 어울려야 한다. 개와 똥을 다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라의 주인들은 눈을 부릅뜰 일이다. 자칫 죽 쑤어 개 줄 수 있다. 그래도 살림살이가 우선이다. 개같이 벌어 정승처럼 쓰고 싶은 게 보통 민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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