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유지되는 이유는 이런 부패한 세상에서도 누군가는 강인한 절제와 인내력으로 부패와의 사슬을 끊고 청렴한 청백리의 길을 걸으면서 깨끗한 공직사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우리 삶에 귀감이 될 만한 옛 선조들의 모습을 살펴봄으로써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스스로 청렴에 대한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오늘 소개할 인물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청백리라 칭송되는 최부와 송흠의 이야기이다.
최부는 조선왕조 초기 전라도 나주에서 태어나 처가 고을인 해남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제자들을 길러낸 뛰어난 학자이자, 문과에 급제하여 상당한 지위의 벼슬살이도 했던 관료 중의 한 사람이며, 송흠은 전라도 영광에서 태어나 22세에 진사과에 급제하고 고관대작을 역임한 인물이다.
송흠은 벼슬살이 초년에 말을 타고 서울에서 고향으로 부모님을 뵈러 오는 길에 마침 이웃 고을에 최부가 귀향해 있음을 알고 그를 찾아갔다. 고향 선후배의 정을 나누려는 뜻이었다. 후배 송흠을 반갑게 맞이한 최부는 송흠에게 “서울에서 고향까지는 어떤 말을 타고 왔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송흠은 “나라에서 휴가차 오는 관리에게 내주는 말을 타고 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 집까지는 어떤 말을 타고 왔느냐고 묻자, 같은 말을 타고 왔다고 답했다.
그러자 최부는 화를 내면서, 공무로 타고 온 말이므로 서울에서 고향까지는 괜찮치만, 고향집에서 자기집까지는 사적인 일로 온 것인데 왜 나라에서 준 말을 타고 왔느냐고 꾸짖으면서 상경하면 나라에 고발하여 처벌받게 하겠노라고 말했다.
최부는 상경하여 고향 후배에 대한 정도 잊고 끝내 나라에 고발하여 송흠은 처벌을 받았지만 그 때의 충고가 거울이 되어 공사를 명확하게 구별하는 철저한 청백리가 되어 청백리의 대표적 인물로 후세에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처음 시작한 벼슬살이에 철저히 버릇을 들이도록 큰 훈계를 준 최부의 청백리도 높이 살 일이지만, 그 훈계를 받아 원망도 하지 않고 끝까지 모범으로 삼아 세상에 이름 높은 청백리가 된 송흠의 청렴정신은 오늘의 우리가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라 여겨진다.
공직자의 청렴은 그 사회의 부패정도를 가늠해 보는 척도라고 할 수 있다. 공직 사회의 청렴은 사회 전체의 청렴을 유도할 수 있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회 제도의 변화는 법률의 개정을 통해서 삽시간에 우리 생활을 규율하는 규범으로 자리잡게 된다. 하지만, 사회 인식의 변화는 그 변화를 이루는 데 수 많은 시간이 필요하게 된다.
최근 청탁금지법의 시행으로 우리 사회는 많은 인식의 변화가 생기고 있다.
하지만, 이럴 때 일수록 더욱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는 괜찮겠지’라는 의식이 자리 잡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용수철처럼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면서 내 자신부터 실천을 통해 청렴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노라 다짐해본다. 다시 뛰자! 청렴 대한민국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