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외환시장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지난 5월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 6개월여 만에 50.4원 하락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5월 환율은이 1135원대였으나 이날 1085.4원에 마감했다.
그렇다고 급격하게 시장이 움직인 건 아니다. 장 중 좁은 박스권에서 거래가 이뤄졌다. 환율이 장중 10원 이상 움직인 것은 지난 4월 25일 11.40원이 마지막이다. 당국이 적극 나서지 않는 이유다.
그럼에도 시장에서 당국의 스탠스가 바뀌었다고 느끼는 이유는 심리적 지지선이 두 차례나 무너졌기 때문이다. 연저점인 1110.50원이 지난 17일 붕괴됐다. 그로부터 3거래일 후인 22일에는 1089.10원으로 마감하며 1090원대도 뚫렸다.
상황이 이렇자 일부 시장 참가자들은 이번 정부가 전 정부에 비해 원·달러 환율 레벨을 낮게 유지하려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시중은행 한 외환딜러는 "당국이 환율 하락을 적극 방어하지 않은 것은 달러화 하락을 일부 용인한다는 시그널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외환당국은 환율 하단이 붕괴될 때 몇 차례 구두경고를 보냈다. 구두경고 후 환율이 낙폭을 줄이긴 했지만 추세적인 하락을 막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당국은 현재까지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 움직임은 시장에 맡기되 쏠림 현상이 있을 때는 개입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국민소득 3만 달러 달성과 소득주도성장을 위해 원화 강세를 용인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원화 강세로 수입업체들의 이익을 높여 내수 활성화를 유도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날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소득주도성장과 환율은 관계 없다"고 부인했다.
환율조작국 지정 우려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미국 재무부는 주요 교역상대국 중 환율조작 여부를 조사해 일년에 두 차례 환율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한다. 미국은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 국가의 기업이 미국 연방정부 조달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또 해당 국가에 투자한 미국기업에 대한 금융지원도 막는다. 당국이 환율시장에 적극 개입할 경우 내년 4월 자칫 환율조작국으로 선정될 수 있다. 이 경우 무역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한 시장 참가자는 "과거 당국이 환율시장에 적극 개입했을 때 경제가 좋아진 적이 없어 개입에 조심스러울 것"이라며 "당국이 시장에 개입해도, 개입하지 않아도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어 딜레마에 빠진 상태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