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강차 바레인으로 떠났던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15일 입국길에서 말없이 공항을 떠났다. 지난 12일 출국 당시 MB발(發) 정치보복론에 불을 지피며 추가 폭로를 예고했던 분위기와는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이 전 대통령 측은 “곧 입장 표명을 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여전히 추가 입장 발표 가능성을 내비친 셈이다.
여권의 속내는 복잡하다. 더불어민주당은 ‘MB=적폐 몸통’으로 정조준한 모양새지만, 직접적인 공격을 삼가는 모양새도 감지된다. 당 내부에선 이 전 대통령에 대한 형사처분 여부를 놓고도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같은 날 동남아순방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문재인 대통령도 일정 마지막 날 취재진을 깜짝 방문, “국내 문제 말고, 순방에 관해서라든지 외교 문제라면 질문을 받겠다”고 말했다. 다만 문 대통령의 향후 발언 수위나 여권의 공세 등에 따라 정국이 살얼음판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통령은 이날 2박4일간의 바레인 일정을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출국 당시 “현 정부의 적폐 청산은 정치보복·감정풀이”라고 정면 비판한 터라, 정치권의 이목이 쏠렸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 등 현안 관련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이후 쏟아지는 질문에는 “날씨가 추운데 수고하신다”라는 말만 남긴 채 차량에 탑승했다.
출국 당시 자신의 발언으로 정국이 ‘적폐 청산 대 정치 보복’, ‘노무현 대 MB’ 등의 프레임으로 고착된 만큼, 제2라운드 준비를 위한 숨 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이 전 대통령의 측근인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에 대한 검찰 수사가 한층 옥죌 경우 추가 반격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전 대통령 내부에선 “노무현 정부 5년치 자료를 꺼낼 수도 있다”는 의견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속도조절하는 與···‘통치행위’ 법리에 곤혹
이 전 대통령의 입 역할을 하는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날 공항에서 적폐 청산에 대해 “정치보복이다. (추가 입장은 낼) 기회가 곧 있을 거다. 다시 보자”며 여지를 남겼다. 친이(친이명박)계인 조해진 전 의원도 같은 날 한 라디오에 출연, 다스 의혹 등에 대해 “광풍처럼 몰아치는 인민재판의 한 모습”이라며 가세했다.
여권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강경파 내부에선 다스 의혹은 물론, 군 사이버사령부의 정치 개입 등으로 검찰 수사 및 사법처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이 전 대통령의 개입 등 직접적인 연결고리 찾기가 쉽지 않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통치행위’ 법리 때문이다. 이는 고도의 정치성으로 사법심사에서 배제되는 것을 말한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대북송금 등이 대표적이다.
MB발 정치보복론이 여의도를 덮친 상황에서 강경모드로 갈 경우 검찰에 수사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는 비판이 나오리라는 것도 부담이다. 민주당 지도부가 이날 이 전 대통령 비판 발언을 삼간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학교 교수는 본지와 통화에서 “이 전 대통령의 개입 증거가 명명백백하게 나오지 않는 이상, 청와대·여당과 검찰 모두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정권 9년 2개월을 통치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해 사법처리 수순을 밟을 경우 정치적 역풍이 불 수도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