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층의 먹잇감으로 전락한 강원랜드의 '채용 비리’ 의혹이 여의도를 덮쳤다. 합격자의 95%(2012년∼2013년)가 소위 ‘빽’으로 입사한 강원랜드의 채용 비리 의혹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위원장인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의 측근이 연루되자, ‘제척 사유’를 둘러싼 사퇴 논쟁이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이해충돌방지 법적 장치인 ‘제척’은 특정 사건에 연루된 법관 등이 불공정한 재판을 할 우려가 있을 때 직무집행으로부터 배제하는 것을 말한다. 법적 근거는 민사소송법 제41조와 형사소송법 제17조 등이다. ‘회피’(스스로 피하는 것)나 ‘기피’(당사자 신청시)와 유사하지만, 제척은 불공정한 재판에 대한 우려가 있을 때 '당연히 배제'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기피 등은 제척의 보충적 성격을 지닌다는 얘기다.
◆한국당, 4년 전 제척 고리로 국정원 국조 ‘어깃장’
문제는 권 의원의 사퇴 정당성 여부다. 26일 여야와 법률전문가들에 따르면 권 의원의 법사위원장직 사퇴를 둘러싼 쟁점은 △법적 책임 △정치적 책임으로 나뉜다.
강원랜드 자체 감사 결과, 2012년~2013년 채용된 신입사원 518명 가운데 493명이 채용 과정에서 ‘권력’을 동원해 입사했다. 권 의원은 ‘강원랜드 채용 비리’ 사건의 핵심 청탁자로, 측근인 비서관과 인턴비서 등이 2013년 초·중반 입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체 감사에서 권 의원 측 청탁 대상자는 10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강원지검은 지난 20일 강원랜드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25일 권 의원 등을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 칼끝이 권 의원을 향하고 있는 셈이다.
핵심은 검찰 수사가 임박한 권 의원과 법사위 직무의 관련성이다. 법사위의 중요 업무 중 하나는 ‘법무부 소관에 속하는 사항’이다. 다만 국회 상임위원회는 본회의 부의에 앞서 법률안·예산안 심사를 위한 전 단계다.
◆“법적 판단 이전에 정치적 책임져야”···權 ‘요지부동’
주목할 대목은 이해충돌 소지가 없느냐는 점이다. 검찰과 법원은 법사위의 소관 기관이다. 관련 예산과 법안 등의 최종 결정권도 쥐고 있다. 국회 권력으로 사법부의 목줄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셈이다. 더군다나 법사위 소속 의원들의 검찰 정보 접근성은 타 소속 상임위원들을 압도한다. 위원장 신분에서 나온 관련 수사에 관한 얘기는 사실상 사법부에 대한 압박 내지 수사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법부의 정치화’가 만연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고발 정도 당한 수준에서 법사위원장직을 사퇴하는 것은 성급하지만, 이해충돌 여지가 있다”며 “(지금) 본인 스스로 거취를 정리하거나, 수사가 본격화하면 신변 정리를 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대한변호사협회 홍보이사를 지낸 강신업 변호사(법무법인 하나)도 “권 의원이 사퇴할 법적 책임은 없지만 포괄적으로 보면 법사위가 재판 등에 연관된 만큼, 직무 연관성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현행 국회법상 현역 의원의 상임위 활동 제한 규정은 ‘영리 활동’에 국한돼 있다. 그보다 하위인 국회의원 윤리 실천규범에는 사실상의 ‘회피’ 규정이 있지만, 권 의원의 결단 없이는 무용지물이다. 권 의원은 법사위원장직 사퇴 논란을 “정치 공세”라고 일축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이와 관련해 “권 의원 스스로 사퇴하는 게 맞지만, 여당도 사퇴를 강요해선 안 된다. 사퇴를 주장하는 것은 합당하나, 강요하는 것은 정치적 공세”라며 “하루라도 빨리 검찰에 수사를 촉구하고 결과에 대해 응당 책임을 지는 게 옳다. 법사위원장 사퇴를 놓고 논쟁을 할 만큼, 정국 상황이 한가하지 않다. 비생산적인 논쟁”이라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