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 없는 이주일, 상속을 생각한다
지난 8월 27일은 한국 코미디계의 큰별인 고 구봉서 1주기이자, 고 이주일 15주기가 겹치는 날이었다. 생전에 다복했던 구봉서 추모모임은 100여명의 연예인 후배와 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고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코미디계의 황제라 불리던 이주일 선생은 저승에서도 편안하지 못하다. 후배들이 찾아갈 묘소가 사라졌고, 묘비는 뽑힌 채 버려졌다.
수지큐 음악에 맞춰 엉덩이를 흔들며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를 외쳐대던 이주일. 그는 고단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줬고,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금연광고 모델로 나와 흡연율을 뚝 떨어뜨릴 만큼 선한 일을 했다. 공익재단과 금연재단 설립을 꿈꿨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유족들이 기껏해야 1년에 100만원 안팎인 묘지 관리비를 체납했을 정도로 유산을 탕진했다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한국인은 대체로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재산을 쥐고 있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50%에 달하는 상속세를 줄이는 방법만 연구할 뿐 정작 남겨진 재산이 후손을 행복하게 하는 데는 관심이 덜하다. 잘못된 재산상속은 상속인에게 독이 든 성배를 전해주는 꼴이다. 국내 재벌치고 상속에 관한 분쟁이 없는 가문이 거의 없다. LG 그룹 구(具)씨 가문을 제외하고는 모든 재벌 형제들이 싸운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자는 아들 형제간 극심한 대립으로 그룹이 휘청거릴 정도로 위기를 맞고 있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54홀 규모의 명문 골프장인 레이크사이드CC 역시 형제자매간 재산다툼을 벌이다 결국 삼성그룹에 넘어갔다. 아마 후손들이 공동 관리를 했더라면 대대손손 잘 살 수 있는 터전이 되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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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가족 모두가 납득할 분명한 기준을 세우고 공평하게 재산 배분을 해야 한다. 부모의 편애가 자녀를 원수지간으로 만든다. 효성그룹 오너 가족 간 분쟁은 따지고 보면 장남에 대한 차남의 상대적인 박탈감이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70~80대 어르신들은 장자와 아들 중심 상속을 당연시하지만 젊은 세대는 장남과 차남, 아들과 딸 사이의 차별을 이해하지 못한다. 특히 딸들은 여성차별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상속을 계기로 폭발하면서 형제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기도 한다. 법정상속지분의 절반은 받을 수 있도록 법률이 보장하는 유류분(遺留分) 상속에 관한 소송이 2016년 1091건으로 4년 전에 비해 무려 5배 증가했다. 형제간 유류분 청구 소송을 막으려면 자녀에 대해 차이는 두되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상속에 관한 준비는 빠를수록 좋다. 서울 영등포역 부근의 어느 자수성가한 부자가 빌딩을 남겨놓고 유언 없이 사망하자 자녀들이 상속재산을 놓고 법정다툼을 벌였다. 나중에 빌딩을 처분하니 연체된 상속세와 변호사 비용 대기에도 모자랐다고 한다. 부모는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열심히 재산을 모았는데, 그 부모가 남긴 유산이 불행의 씨앗이 된다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생전에 적절하게 재산을 나눠주고 그 종잣돈을 바탕으로 자식들이 자력갱생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주면 좋을 것이다. 심신이 건강할 때 미리 유언장을 작성해 행여 사후에 생길 법정다툼을 막는 예방 장치도 필요하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라틴어로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로마에서는 개선장군 뒤에 노예 한 명을 세워 “메멘토 모리”를 외치게 했다. 개선장군들이 빈번하게 쿠데타를 일으키자 ‘너무 우쭐하지 말고 겸손하라’는 뜻으로 복창하게 했다. 세상을 떠날 때 남은 재산을 누군가에게 넘기는 것은 인생이 유한하기 때문에 불가피하다. 상속과 증여는 결국 현재의 삶에 더 충실하기 위해 언젠가 다가올 자신의 죽음에 대비하는 숭고한 준비라고 할 수 있다.
“더도 덜도 말고 늘 한가윗날만 같아라”라는 말이 있다. 오곡백과가 풍성하고 일가친척이 모이니 늘 이날만 같았으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는 뜻이다. 올해 추석((10월 4일)엔 곰곰 생각해보자. 어떻게 하면 가족과 가문의 행복이 오래오래 지속될지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