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은 저축은행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서민금융이라고 보고,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라는 입장이다. 조금 더 낮은 금리로 대출을 해주고, 예·적금 금리를 높여서 서민들이 목돈을 마련하는 데 도움을 주라는 것이다.
저축은행도 같은 입장이다. 하지만 당국이 만들어 놓은 온갖 규제에 묶여 있는 데다 정책이 손바닥 엎듯이 바뀌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 풀리지 않는 빗장..."금지 항목만 수두룩"
업계 관계자는 "저축은행 입장에선 손실을 줄이기 위해 신용등급이 높은 고객 위주로 대출이 나갈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되면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의 대출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저축은행과 달리 대부업체는 총량규제 대상이 아니다. 제도권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당국의 규제를 있는대로 다 받으면서 영업은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넋두리가 나오는 이유다.
지점 확대도 비슷한 맥락이다. 사실상 지점 운영을 통해 수익을 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 임대료와 인건비를 비롯해 각종 유지비가 매달 고정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저축은행 지점은 이익 추구가 아니라 서비스 차원에서 운영하는 셈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저축은행은 은행과 다르게 단순히 금융업무를 보기 위한 곳이 아니다"라며 "말동무가 필요해 오는 어르신들을 비롯해 지역민들이 모이는 커뮤니티 역할을 하는데 이 같은 특성은 전혀 감안하지 않고 지점 한 두 곳 확대하는 걸 무분별한 확장으로 해석하는 건 말이 안된다"고 꼬집었다.
환전 업무 역시 반쪽짜리다. 은행은 인터넷이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으로 가능하지만 저축은행은 반드시 지점을 방문해야만 환전할 수 있다. 평일 영업시간 내에 지점을 찾아가야 하는 저축은행의 환전업무는 메리트가 거의 없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각종 규제 때문에 고객을 유인할 수 있는 요인이 부족하다고 저축은행들은 하소연한다. 규제 종류도 다양하지만 방식도 문제다. 저축은행에는 'A만 되고 나머지는 다 안된다'는 포지티브식 규제가 적용된다. 예를 들어, 저축은행에서 골드바는 판매할 수 있지만 실버바는 취급이 불가능하다. 허가된 업무만 진행할 수 있는 탓에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기엔 현실적으로 한계가 많다.
◆ "중금리대출 권유할 땐 언제고"...당국 정책 '오락가락'
당국의 '말 바꾸기'도 업계에 혼란을 주고 있다. 애초에 중금리대출상품은 당국의 독려로 출시됐다. 5% 이하 저금리와 연 20%대 고금리로 양분된 대출시장에 주목했다. 사각지대인 5~20%대 사이의 대출을 확대해 중·저신용자의 이자 부담을 덜어주는 취지로 사잇돌대출을 고안했다. 실제로 저축은행은 중금리시장 확대에 일조하기 위해 저마다 상품을 개발·출시했다.
충당금 적립도 그렇다. 당초 당국은 금리 20% 이상 고위험 대출에 대한 충당금을 적립을 내년부터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다 올해 6월 말로 갑자기 앞당겼다.
저축은행으로선 난감할 수밖에 없다. 이미 세워 놓은 장·단기 경영전략 수정이 불가피했다. 기준을 잡아줘야 할 당국이 방향을 잡지 못해 발생한 일이다. 업계에서는 정책의 일관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위원장이 서민금융을 가장 잘 하고 싶은 분야로 꼽았지만 서민금융을 전담으로 하는 입장에선 공감하기 힘들다"며 "저축은행 안정성·건전성 등의 지표를 감안해서 규제를 현실적이면서 탄력적으로 바꾸면 좋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