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23] 샤먼은 어떤 역할을 했나? ③

2017-08-17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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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과도한 권력 남용이 부른 샤먼의 죽음
나라를 세우는 데 또는 정권을 잡는 데 자신이 큰 역할을 했다고 믿는 사람들은 흔히 권력이 생겼을 때 분수를 지키지 못하고 권력을 잘못 남용하거나 과신해서 나라와 자신을 망치는 경우는 예나 지금이나 역사 속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무당 커커추는 테무진이 초원의 강자로 우뚝 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나중에 자신의 분수를 지키지 못하고 과도한 권력을 행사하고 욕심을 부려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나중 칭기스칸이 칸이 된 뒤 일이기는 하지만 샤먼 커커추는 자신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오만해지기 시작했다.

커커추는 대몽골 제국 탄생 때 테무진에게 칭기스칸이란 이름을 내린 인물이다. 그는 천신(天神)이라는 별명 그대로 종교를 등에 업고 마치 자신이 신성불가침(神聖不可侵)한 존재인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행동이 방자해지고 초자연적인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 대칸의 자리를 장악해 보겠다는 야심까지 갖기에 이르렀다.

▶ 샤먼, 칭기스칸 동생 제거 시도
커커추는 칭기스칸의 동생인 카사르와 싸운 뒤 하늘의 말을 빌려 카사르를 제거하려 했다.
동생이 자신의 자리를 노린다는 커커추에 말에 칭기스칸은 즉각 동생을 잡아들이고 지휘권의 상징인 모자와 허리띠를 압수했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어머니 호엘룬이 당장 달려와 칭기스칸을 꾸짖었다.

"물어 찢다 못해 제 자궁을 물을 뜯을 놈들아! 제 배꼽을 자르는 놈들아!" 하면서 분노를 나타냈다. 이어 "활 잘 쏘는 카사르가 부족들이 일어날 때마다 그들을 길들였는데 이제 적이 모두 제거되고 나니 필요가 없어졌느냐"며 테무진을 질책했다.

"어머니를 화나게 해서 정말 두렵고 두려웠다"며 칭기스칸은 즉각 동생에게 모자와 허리띠를 돌려주고 물러났다.
이 사건이 있은 후에도 커커추는 황금귀족인 칭기스칸 일가를 장악하려고 시도하며 칭기스칸의 막내아우에게 공공연히 모욕을 줬다.

그렇게 되자 이번에는 지혜로운 아내 부르테가 나섰다.
칭기스칸의 생전에도 아우들에게 모욕을 주는 커커추가 칭기스칸이 죽으면 아들들에게 반역할 것이 분명한 데 어떻게 그냥 보고만 있느냐고 거들자 칭기스칸은 마침내 그를 제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동생 테무게에게 그 임무를 부여했다. 커커추가 아버지 멍리크와 함께 칭기스칸을 방문하러 왔을 때 테무게는 대기시켜 놓은 3명의 호위병에게 그를 처치할 것을 명했고 그들은 씨름을 하듯이 커커추를 낚아챈 뒤 등뼈를 부러뜨려 죽여 버렸다.

아들이 죽었는데도 아버지 멍리크는 조금도 놀라지 않고 칭기스칸에게 영원히 충성할 것을 다짐했다.
이로서 종교를 앞세워 국가에 도전하고 국정을 농단했던 샤먼 커커추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최고 권력자를 세우는 데 공이 있다고 생각하고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할 경우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로 볼 수 있다.

칭기스칸은 이후 충성을 담보로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거나 권력을 남용하는 사람은 절대 용서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가 레임 덕 없이 제국을 온전하게 보존해서 후계자에게 넘겨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커커추 제거와 함께 종교에 대한 국가와 대칸의 우월적인 지위도 확고해졌다.
이제 더 이상 칭기스칸의 권위에 도전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종교 장악, 텡그리 대리자 자처
그러나 칭기스칸의 대몽골 제국은 여전히 종교적 토대 위에 보존됐다.
탱그리, 즉 하늘은 여전히 몽골인에게 최대의 신이었기 때문에 칭기스칸은 텡그리의 대리자를 자처하며 절대자의 위치를 유지해 간 것이다.
그의 명령은 바로 텡그리의 명령이었고, 그에 대한 반역은 바로 역천(逆天), 즉 하늘의 뜻을 따르지 않는 행위였기 때문이었다.
 

[사진 = 칭기스칸 좌상]

커커추가 제거되는 것은 십 수 년 후의 일이지만 몽골 초원 통일 당시에는 이들 샤먼들의 활약과 역할로 테무진의 지위와 위상은 더욱 굳건해졌다.
후일 칭기스칸이 세계 정복 전쟁 과정에서 탁월한 전과로 이어지는 심리전과 홍보전은 이때부터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 샤머니즘이 지배한 유목민 생활
몽골비사를 읽어보면 예로부터 유목민들이 얼마나 샤머니즘에 깊이 젖어 생활해 왔는지 알 수 있다.
샤머니즘에 젖어 살다 보니 사물을 인식하고 생각하는 그들의 정신세계도 샤머니즘과 떼어서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다.

적어도 몽골이 17세기 티베트 불교를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그랬다.
티베트 불교가 들어 온 이후 몽골의 샤머니즘은 불교와 접합된 새로운 형태로 그들의 생활 속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목민들의 생활에 바탕을 둔 인식 체계는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생활 속에 젖어 있는 샤머니즘의 흔적은 지금까지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사진 = 오보(서낭당)와 하닥]

우리의 성황당(서낭당)이나 마찬가지로 돌무더기를 쌓아둔 오보는 지금도 몽골 초원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 오보에 걸려서 바람에 휘날리는 형형색색의 하닥이라는 헝겊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오보 앞에서 참배를 드리는 몽골인의 모습을 보는 것 역시 어렵지 않다.
그것은 몽골인들의 생활 속에는 아직도 많은 샤머니즘과 관련된 관습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하지만 현재 몽골에서 샤먼을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몽골의 서쪽 호수지역 홉스골에는 아직도 많은 무당들이 남아있지만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무당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사진 = 몽골의 샤먼 침바드]

어렵게 수소문해서 홉스굴 출신 침바드라는 30대 샤먼이 불의 제사, 제화(祭火)를 주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행사가 열린 곳은 울란바토르에서 30 Km 정도 떨어져 있는 봄바트라는 산기슭의 휴양지였다.
 

[사진 = 바얀고비의 관광 게르]

불의 제사는 몽골어로 ‘갈운 타킬라’라고 부른다. 유목민들에게 불은 가계를 이어가는 상징인 만큼 생명처럼 중하게 여겨진다.
불의 신앙과 관련해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항상 그들의 주거지인 게르의 중앙에 놓인 ‘골롬타’라고 불리우는 화로다.

테무진이 이복동생 벡테르를 살해하려 했을 때 그는 테무진에게 "내가 죽더라도 나의 골롬타만은 훼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그것은 동생인 베르구테이를 살려 가계를 이어가도록 해 달라는 당부로 이는 곧 골롬타가 혈통 그 자체로 여겨질 만큼 중요시 됐다는 얘기다.

침바드의 불의 신을 부르는 주술 행위는 밤 10시가 가까이 돼서 시작됐다.주위에는 아시아 각국의 샤머니즘을 연구하는 학자 등 백여 명이 샤먼의 주술 행위를 지켜보고 있었다.
물론 거기에는 한국에서 온 서강대교수도 있었다.

숲 속 빈터 중앙에 모닥불이 피워지고 불을 마주보고 양반 다리를 하고 앉은 샤먼은 불의 신을 부르는 주술을 시작했다.
고개를 좌우로 까닥이며 주문을 외우는 그의 얼굴은 모닥불의 불빛을 받아 붉게 물든다.
샤먼이 신을 부르는 주술행위를 계속하는 동안 여자 샤먼 두 명이 그 주위를 돌며 술과 우유를 계속해서 뿌린다.
주술이 한참 절정을 향해 치닫는 듯 침바드는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한다. 입에 끈을 물고 딩! 딩! 소리를 내기도 하고 비슷한 소리를 계속해서 반복하기도 한다.
샤먼은 절정을 넘어선 듯 주문을 외면서 손으로 얼굴을 부비고 몸을 쓰다듬으면서 비틀기 시작한다.
얼굴이 상기된 표정으로 하는 동작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성적 충동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관능적인 것이었다.
침바드가 힘이 빠진 듯 더 이상 주문을 외지 못하고 쓰러질 듯하자 여자 샤먼 한 명이 향불을 코에 갖다 대며 기력이 회복되도록 도와준다.

불의 제사는 거의 끝나 가고 있었고 정신이 나간듯하던 샤먼도 기력을 회복해 가고 있었다.
참석한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샤먼이 불의 신을 불렀을 것이라는 분위기에 젖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샤머니즘이 생활화 된 몇 백 년 전의 몽골인들이 샤먼이 하는 말을 하늘의 말로 믿게 되는 것은 별로 이상할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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