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 사람들 대부분은 행복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지수라는 브랜드를 입혀서 마치 모두가 행복한 것처럼 포장돼 있는 것은 옳지 않다.
한 인물이나 사건, 그룹, 심지어 나라를 바라보면서 천편일률적인 시각으로 마치 '부탄 만큼은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여야 한다'는 것은 이미 사실과 괴리가 발생한 것은 아닐까? 일제(日帝)는 차치하고라도 위안부, 독도 등으로 우리를 괴롭히는 일본보다 더 무서운 나라가 부탄이라고 해도 당신은 여전히 부탄을 좋아할 것인가?
과거 CBS는 한국언론재단과 유엔난민기구의 지원을 받아 20여 년간 난민 생활을 하고 있는 네팔의 부탄인 난민촌을 취재한 적이 있다. 무엇보다도 행복한 나라 부탄 왕국이 인구의 무려 7분의 1에 달하는 네팔계 소수민족을 강제추방한 나라라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가 않다는 점이다.
네팔의 동남쪽 자파주에 자리한 작은 마을, 다막 주변에는 1990년대 초반 부탄에서 강제추방된 네팔계 난민 10만여 명이 거주하는 티마이 캠프 등 7개의 대규모 난민촌이 자리하고 있었다. 난민들은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부탄 정부가 학교교육과정에도 있던 네팔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강요했다", "네팔어로 된 책은 모두 수거해 불태워버렸다"'고 증언했다. 우리말 사용 금지, 강제 이주 등으로 나라를 등지게 한 일제와 무엇이 다른가? 이런 강제 추방에도 세계는 행복지수에 가려 부탄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도 못했고 볼 수도 없었던 것은 아닐까?
난민들은 UN난민기구에 "소수민족의 문화와 언어를 말살하려는 정책에 항의하는 네팔계 부탄인들이 평화적 시위를 벌이자 부탄정부는 '티베트 식 문화와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군인들을 동원해 강제진압하고 끌고 가 고문을 하고, 심지어 밤에 쳐들어와 마을을 불태웠다"고 호소했다.
집과 땅, 직업 등 모든 것을 버려두고 부탄에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회고하는 난민들은 1958년 이래 부탄의 정식 '국민'이었다. 고향을 뺏긴 난민들은 "부모님이 묻힌 땅에 묻히고 싶다"며 시위를 벌이곤 했다. 일제가 우리 민족을 탄압하면서 전 세계엔 마치 우리나라를 계몽시키고 있다는 얼굴로 김구 선생의 임시 정부와 윤봉길·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불렀던 것이 불현듯 생각난다.
근래 미국은 8만4000명이 넘는 부탄 난민을 수용했으며, 호주와 캐나다도 이들을 받아들였다. 현재 난민캠프에는 약 2만4000명이 재정착을 기다리며 벨당기·사니스차르 난민촌에 남아 있다. 수많은 난민들은 고향을 놔두고 이국만리로 떠나가며 희망을 품을 수 있겠지만, 가족과 친지 그리고 이웃들과 생이별을 해야 한다. 부모님들이 묻힌 산소가 있는 고향 부탄으로는 돌아갈 수도 없을 것 같다. 그들이 성공을 해서 비싼 체재비를 물을 수 있다고 해도 그토록 자신들의 치를 떨게 한 부탄의 '행복 마케팅'에는 참여하지 않을 듯싶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당신은 부탄이 정말 '행복한 나라'라고 믿고 싶은가? 여전히 부탄에 가고 싶은가?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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