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쓸모 없는 것으로 여겨져 버려진 '쓰레기'가 박물관을 꽉 채웠다.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은 프랑스 국립유럽지중해문명박물관(관장 장 프랑수아 슈네)과 오는 10월 31일까지 기획전시실Ⅰ·Ⅱ에서 특별전 '쓰레기×사용설명서'를 개최한다.
특히 이 전시가 눈길을 끄는 것은 쓰레기를 통해 인간의 삶을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1971년 미국의 학자 윌리엄 랏제가 애리조나 주 투손 쓰레기 매립지를 발굴한 이후, 쓰레기 분석을 통해 생활사를 복원하는 쓰레기 고고학(garbage archaeology)은 학문의 한 분야로 자리잡았다. 박물관 측은 "생활문화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쓰레기에 대한 탐구는 우리 자신에 대한 접근"이라며 "이번 전시는 쉽게 얻고 버리는 현대 소비 풍조 속에서 쓰레기 문제를 통해 자신을 살펴보고, 우리 이웃이 실천하는 대안을 공유함으로써 관람객 스스로 해법을 생각해 보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대량생산·대량소비 시대 쓰레기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1부 쓰레기를 만들다' 와 '2부 쓰레기를 처리하다' 그리고 전통 농경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재활용사(史)와 여러 대안, 해법 등을 제안하는 '3부 쓰레기를 활용하다'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사람들이 하루, 1주일간 얼마나 소비하고 쓰레기를 배출하는지를 영상물과 초기 컵라면 용기, 나무 도시락 등의 일회용품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2부도 넝마 바구니, 폐지 손수레 등 폐자원 수집 도구, 한양대 문화재연구소가 2009년 발굴한 '서울 행당동 출토 생활쓰레기 유물' 등을 통해 현 시대의 쓰레기 문제를 짚는다.
이어 3부에서는 ‘지승병’, ‘피피선 바구니’, ‘재활용 등잔’, ‘철모 똥바가지’ 등 재활용사 관련 유물·사진 자료와 함께 우리 '이웃'이 보여주는 대안을 자료와 인터뷰 영상 등을 소개한다. 특히 쓰레기로 오인돼 잃어버릴 뻔했던 하피첩, 영조대왕 태실 석난간 조배의궤, 미인도 등의 문화재는 전시장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척 반갑게 느껴진다.
전시는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려는 개인·단체·기업의 대안도 소개한다. 장난감 재활용 사회적 기업 ‘금자동이’부터 버려지는 청바지로 가방을 만드는 마을기업 ‘리폼맘스’, 양복을 기증받아 면접을 준비하는 구직 청년 등에게 값싸게 대여하는 ‘열린옷장’, 제주 바다의 쓰레기를 수집해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재주도좋아’, 폐품을 새로운 물건으로 탄생시키는 리폼의 달인들까지 전시장에선 물건에 담긴 추억·의미를 교감하고 버림받는 물건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박물관 야외와 실내엔 설치미술가 최정화의 ‘만인보’, '브리딩 플라워'(breathing flower) 등의 작품과 김종인 서울여대 교수의 ‘마니미니재미形’ 등 정크아트(Junk Art)가 전시된다. 또 자연 분해가 어려운 스티로폼, 알루미늄캔, 유리 등의 합성소재를 활용해 쓰레기가 전통적인 십장생을 대체해버린 현실을 풍자한 ‘신(新) 십장생’ 등 환경 문제에 관심을 두는 학생들의 작품도 선보인다.
이 밖에 어린이들을 위한 재활용 놀이터, 싫증난 장난감과 친환경 가방을 교환하는 코너 등의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천진기 관장은 "인류의 공통 과제인 쓰레기가 개인과 공동체, 미래를 위해 풀어야 할 화두가 된 지금, 이번 전시가 우리 생활을 돌아보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