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진칼럼] 한반도 전략 지형 변화에 초점을

2017-07-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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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강영진]


정부가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 실행을 서두르고 있다. 베를린 구상에 대해 북한 노동신문이 “잠꼬대 같은 궤변”이라는 부정적 반응을 보인 지 이틀 만에 군사회담과 적십자회담을 갖자고 제안한 것이다. 물론 북한 노동신문의 반응에는 ‘6·15 선언과 10·4 선언을 존중하는 건 다행스럽다’는 부분적 긍정 표현이 담겨 있긴 하다. 조명균 통일부장관은 대북 제안과 관련한 발표문에서 “북한이 진정으로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발전을 추구하고 과거 남북이 합의한 7·4 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 및 10·4 정상선언을 존중한다는 입장이라면 우리의 진정성 있는 제안에 호응해 나와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머뭇거리는 북한을 재촉했다. 남북대화를 하루빨리 복원하기를 원하는 간절함이 잘 드러나 있다. 또 남북한 연락채널을 통해 답변해달라고 지정함으로써 당장 북한이 대화에 호응해 나서지 않더라도 끊어져 있는 연락채널만이라도 복원하자고 강조했다. 오래도록 단절돼 있는 남북대화를 재개할 수 있다면 다소 저자세로 비쳐지더라도 감수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하고 의기양양해하는 북한을 어떻게든 협상자리로 끌어내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정부의 대북 제안에 대해 미국과 일본 정부 당국자들은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자 당장 한·미·일 공조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우려하는 반응들이 이어지고 논란도 확산되고 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면 어느 정도 논란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은 문제가 될 만한 상황은 아니다. 더욱이 ‘전쟁 중에도 의사소통은 해야 한다’는 말처럼 어떤 상황 아래서도 남북한 사이에 대화채널이 열려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원칙적으로 옳다. 또 대화 재개를 위해서 조심스럽게 상대를 설득하려는 정부의 자세를 문제 삼을 일도 아니다. 이렇게 볼 때 정부의 대북 제안은 비록 미국, 일본의 볼멘소리가 나오고 일부 평론가들의 우려 목소리가 불거진다고 해도 아직은 무리한 수준까지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북한이 대화나 연락채널 복원에 호응해 나설 것으로 예상하긴 이르다. 그러나 북한이 대북 제안에 대해 즉각적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은 일단은 긍정적 신호일 수 있다. 지금 김정은 위원장과 측근들은 대화에 호응할지 말지, 나아가 응한다면 어떻게 할지, 아니면 제안을 묵살하고 역공을 펼지 치밀한 수 계산에 몰두하고 있을 것이다. 과거 북한의 행태나 ICBM 발사 성공에 의기양양해하는 현재 북한의 모습을 보면 대화 제의에 전폭적으로 호응해 나올 것으로 예상하기 어렵다. 호응하더라도 정부가 수용하기 껄끄러운 이런저런 조건을 걸 가능성이 커 보인다. 물론 예상외로 아무런 조건 없이 호응하고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이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며 노무현 정부 시절의 철학과 구상을 일정하게 이어받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따라서 북한의 반응이 어떤 것일지라도 정부의 대화 복원 의지는 쉽게 약화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입장은 한반도 상황을 주변국이 좌지우지할 여지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최소한 급격한 위기고조 등 우리가 원치 않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예방 내지 저지할 기회를 만들 수 있고 나아가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의 대북 자세에 대해 찬반의 여론이 팽팽하다. 지난 9년여 남북관계 단절이 핵문제 악화로 이어졌기에 어떻게든 관계를 복원해야 한다는 주장과 핵탄두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며 미국을 직접 공격할 수 있는 ICBM 시험발사까지 한 북한을 저지하려면 압박을 최고 수준으로 높여야 할 때라는 주장이 맞선다. 두 주장 가운데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판정을 내리는 건 무의미하다. 또 두 주장 가운데 한 가지만 선택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 1990년대 공산권의 붕괴와 북한의 ‘고난의 행군’, 북미 핵협상의 실패와 핵문제의 악화, 정부의 대북 압박과 유화 정책의 교차는 긴 눈으로 볼 때 결과적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상황의 개선에 긍정적으로 기여하지 못했다. 거꾸로 말하면 대화 복원을 위해 노력하는 현 정부의 입장이 한반도 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해결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부의 대북정책을 놓고 미시적·근시안적 시각에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생산적이지 못하다.
방법론적 문제를 두고 논란을 벌이기보다 전략적 문제를 천착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최근의 한반도 정세는 예전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북한은 게임체인저(game changer)라는 ICBM 시험발사에 성공했고, 한·미동맹의 바탕은 맹목적 가치에서 타산적 가치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으며, 중국과 러시아는 한·미동맹의 해체를 정면으로 노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지를 논의하는 것이 생산적이지 않을까.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방안이 무엇인지, 약화가 불가피하다면 핵무장이라도 해야 하는 건지, 중국과 러시아의 남한 흔들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방안이 무엇인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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