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은 김 위원장이 기업들의 지배구조를 비판·감시해온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강조했고 삼성 변호인단은 직접 경험한 내용이 아닌 추측과 단정에 따른 증언이라며 공소사실의 증거가치가 없다고 공전을 이어갔다.
14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 심리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임원 5인에 대한 39차 공판이 열렸다. 이날 증인으로 김 위원장이 출석했다.
현직 장관급 인사인 김 위원장의 증인 출석은 이례적으로 여겨진다. 지난 4월 이 부회장의 첫 재판에 나온 뒤 재판에 나오지 않던 박영수 특검도 김 위원장의 지위와 증언의 중요성을 고려해 법정에 나왔다. 박 특검은 신문은 직접 하지 않았다. 특검이 3시간 신문을 진행하고 15분간 정회가 선언됐을 때 박 특검은 김 위원장에게 먼저 다가가 악수를 청하며 “고생하셨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공정위에 하루 연가를 냈고 관용차를 타지 않고 개인차량으로 직접 운전해 왔다. 김 위원장은 “현재 공정거래위원장이고 오늘 취임사를 한 지 딱 한 달이다. 공직자로서 이재용 부회장 재판에 나오는 것이 심적인 부담됐다”면서도 “그럼에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의무를 이행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 출석했다”고 말했다. 이어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 한국경제에 긍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법원 안팎에선 시장경제를 감시·감독을 담당하는 공정위원장의 증언을 '일반 시민'의 증언이라고 볼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김 위원장도 시민 자격으로 참석했다고 했지만, 증언 도중 삼성을 제외한 KCC 등 다른 기업이 연관된 사안에 대해서는 “현직 공정거래위원장이다 보니 불공정하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면 해당 기업에 법률적 불확실성을 높여준다”며 답변을 피했다.
◆ “삼성, 성공의 역설에 빠져”...잇단 비판과 조언
김 위원장은 ‘삼성 저격수’라는 별명을 얻게 된 배경과 관련, “많은 기업들을 상대했음에도 삼성과는 대화 채널이 유지되지 않았기에 공개적으로, 법률적으로 대응해 ‘삼성 저격수’라는 별명을 갖게 된 것 아닌가라고 생각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2013년 삼성 사장단회의에서 강연한 이후 삼성과의 대화채널이 생겼으며, 주로 김종중 사장과 대화했다고 증언했다.
김 위원장은 다른 기업 3세들은 많이 만나봤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청문회 이후 두 번째라고 했다. 이날 정회 선언 후 이 부회장은 김 위원장에게 먼저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김 위원장은 이건희 회장 와병 이후 삼성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독단이 아닌 고위 임원들의 집단지성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김종중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사장에 물어보니 ‘이 부회장의 경영 카리스마가 확립되지 않아 이견이 있을 경우 10건의 결정사항이 있으면 이중 4건은 이 부회장 뜻을 따르고 6건은 참모들의 회의를 통해 결정하는 집단지성으로 운영한다’고 했다”고 답했다.
김 위원장은 삼성과 이 부회장에 대한 비판과 조언을 이어갔다. 그는 “삼성은 놀라운 성과를 낸 기업이지만 성공의 역설에 빠진 것 아닌가 한다”며 “이 부회장 옆에 아버지의 가신들이 사실을 왜곡해 올바른 판단을 할 기회를 앗아간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 부회장의 얼굴에는 순간 미소가 스쳤다.
또 김 위원장은 이 부회장을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과 비교하면서 "경영권 승계를 완성하려면 새로운 사업에서 성공해 경영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삼성이 어려운 이유는 이재용을 둘러싼 미전실, 참모실이 잘못된 정보를 전하고 불법적인 걸 만들어주려 했고 그걸 끊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이재용이 자유 신분이 돼 경영으로 시장의 평가를 받겠다고 하면 이재용과 삼성, 한국경제 모두에 긍정적인 결과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하자 이 부회장의 미소는 점점 커졌다.
◆ “승계를 위해 청와대 로비” vs “추측·단정에 불과”
김 위원장의 증언을 놓고 특검과 삼성 변호인단은 “승계를 위해 청와대 로비”와 “추측·단정에 불과”하다며 맞섰다.
김 위원장은 특검이 “삼성은 합병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관계없는 경영상 판단이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합병은 승계 작업의 핵심 중 하나다. 그룹 미래전략실이 기획하고 그대로 집행된 시나리오의 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요 결정을 하는 이사회 이전에 김종중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이 나에게 와서 의견을 구한 것이 그 증거”라고 덧붙였다.
특검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승계에 반대했다면 합병 시도를 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는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검은 이 같은 증언을 바탕으로 “김 위원장은 오랜시간 기업들의 지배구조를 비판·감시해왔고 삼성의 브레인이라고 평가받는 김 전 사장으로부터 기업 내부 정보를 전해 들어 구체적으로 알고 있다”며 “삼성이 이 부회장 승계를 위해 합병, 지주사 전환을 추진했고 청와대에 이를 청탁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삼성 변호인단은 “삼성물산 합병이·금융지주사 전환에 대해 각 회사 이사회 대신 미전실이 이러한 결정을 내렸는다는 표지나 사건이 있었나”는 질문에 김 위원장은 “증거를 댈 수 없지만 국민 모두가 아는 사실”이라고 답했다. 이어 변호인단이 “직접 경험한 사실은 아니지 않나”라고 묻자 김 위원장은 “네”라고 답했다.
삼성 변호인단은 “김 위원장이 직접 경험한 내용도 없고 김 위원장의 추측·단정에 따른 증언”이라며 “삼성은 원래부터도 지주사 전환계획 없었고 확정적으로 지주사 전환 추진하지 않기로 결론 내렸다. 이날 증언은 공소사실의 증거가치가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