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13일 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위한 특별 공동위원회를 오는 8월 워싱턴에서 개최하자고 공식 요청한 데 대해 "모든 가능성에 대해 예단하지 말고 준비하라"고 참모들에게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고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미 양국의 자동차 교역현황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며 "FTA가 발효된 5년 동안 우리가 미국에 자동차를 수출한 건 오히려 줄었다"며 "반대로 미국으로부터 한국이 수입한 건 많이 늘었다"고 지적했다고 이 관계자가 밝혔다.
문 대통령은 정부조직법 개편이 늦어지면서 통상교섭본부장이 공석인 점을 지적하면서 "조직적으로 갖춰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 조기에 국회와 여야에 협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또 "미국의 개정협상 요구의 진의를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며 "미국 측이 요구하는 게 있을 것이고 우리 측 요구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당당히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밝혔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현 단계에서 우리 정부의 입장은 미국의 요청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미국 측의 요구가 있으면 테이블에 앉아 논의해보자는 게 기본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도 "우리는 6월 말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가 제의한 바와 같이 우선 양측 실무진이 한미 FTA 시행 이후의 효과를 면밀히 조사·분석하고 평가해 한미 FTA가 양국간 무역 불균형의 원인인지를 먼저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개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이번 USTR서한은 미측이 한미 FTA 규정에 따라 공동위 특별회기 소집을 요청하는 것으로서, 미측은 공동위 특별회기를 통해 한미 FTA 개정 가능성 등 구체적 요구를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우리는 양국간 무역 불균형에 미친 FTA의 영향을 분석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개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미 FTA에 따르면 공동위의 결정은 양 당사자의 컨센서스(동의)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미측 제안에 동의하는 경우에만 공동위가 개정 협상을 개시하자고 결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이날 브리핑에서 우리 정부 협상 대표인 통상교섭본부장이 공석인 만큼 정부조직법이 통과된 이후 공동위를 열겠다고 밝혀 사실상 미국 측에 연기 요청을 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여한구 통상정책국장은 "모든 시나리오를 준비 중이다. 미국이 어떻게 나올지 예단하기 어렵지만 나름대로 대비하고 있다"면서 "미국 입장에서는 가장 관심 있는 게 무역적자 감축, 무역장벽 해소인데 이런 부분은 한미 FTA 개정이 아니더라도 해결할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이 어떤 부분의 개정을 원하는지, 개정이 아니더라도 양국의 이익균형에 맞게 해결할 방법이 있는지, 예를 들어 FTA 이행 과정의 개선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지 아직 불명확한 게 많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 역시 "미국측 서한에도 관심 분야를 명시해놓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때부터 철강, 자동차 분야를 말해왔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면서 "그동안 만반의 준비를 해왔다. 우리도 요구할 것도 많이 있고 당당하게 요구할 것을 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수입규제를 위해 무역 효과를 측정하는 평가기관인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2015년 기준으로 미국의 대한 무역적자를 283억달러로 집계하면서 한미 FTA가 없었다면 무역적자는 440억달러가 됐을 것이라는 미측 통계치도 제시했다.
이 관계자는 "자동차의 경우 일종의 공동조사를 통해 미 측 주장의 사실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며, 철강 분야도 미국 측 인식과 달리 한국도 중국의 철강소재와 관련해 피해자라는 입장을 누차 얘기해왔고 특별공동위에서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같이 조사하자는 게 우리 입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