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형 기자 =얼개를 드러낸 문재인 정부의 첫 세제개편안을 둘러싸고 백가쟁명식 논쟁이 일고 있다. 보수진영은 ‘부자 증세’ 프레임을, 진보진영은 ‘정공법을 피한 꼼수 증세’로 치부한다.
다음 초 공개할 증세안의 핵심은 ‘고소득자 소득세 과세표준(과표) 구간’ 조정이다. 최고세율(40%) 적용구간을 현재 5억원 초과에서 3억원 초과로 문턱을 낮추는 안이 유력하다. 현행 소득세율은 과세표준에 따라 6개 구간(과표 1200만원 이하 6%, 4600만원 이하 15%, 8800만원 이하 24%, 1억 5000만원 이하 35%, 5억원 이하 38%, 5억원 초과 40% )으로 나눈다. 문 대통령의 대선 당시 공약이었던 과표 확대 및 최고세율 인상(40%→42%)보다는 후퇴한 셈이다.
정부는 대신 법인세 실효세율 증대를 위한 비과세·감면 제도 정비를 비롯해 상속세·증여세 공제 혜택 축소 등에 나서기로 했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 ‘조세·재정개혁 특별위원회(가칭)’를 신설, 법인세 인상 등을 논의한다. 이에 따라 갈등유발 이슈는 중반기 이후 과제로 미뤄질 전망이다. 정부의 첫 세제개편안이 양날의 칼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세수확대 진실은…소득탄력성 추정치 주목
12일 당·정·청에 따르면 증세의 목적은 ‘조세정의 실현’(효율성)과 ‘소득 재분배 강화’(형평성)다. 증세를 통해 ‘세수 확대→재정 투입→공공일자리 창출→민간일자리로 확산→소득주도 성장’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효율성과 형평성 간 상충 문제 해결 실패로, 집권 초 소득주도 성장을 꾀하지 못할 경우 되레 중반기 과제인 법인세 인상 동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
첫 번째 쟁점은 세수 확대 여부다. 정부는 지난해 과표 5억원 구간을 신설하고 소득세 최고세율을 기존 38%에서 40%로 올렸다. 세수 확충 규모는 연간 기준으로 6000억원가량이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과세표준 3억원을 넘는 종합소득자 수는 4만4800여명으로, 최고 소득세율을 적용한다고 해도 추가 부담 총액 최대치는 1800억원 수준이다. 여기선 ‘고소득자의 과세 강화에 따른 높은 소득탄력성 추정치’가 문제가 된다.
한국조세연구원의 ‘과세소득탄력성에 관한 연구’를 보면, 상위 5%의 소득자의 과세소득탄력성 추정치는 0.99로 매우 높다. 이는 세율 인상에 따른 세후한계소득이 1%포인트 하락할 경우 장기적으로 과세소득 자체가 0.99% 하락, 순세수 증대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얘기다.
◆재정확대와 증세 엇박자…OECD와 역행
정부 정책 간 엇박자도 문제다. 문재인 정부의 1호 정책은 11조2000억원 규모의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추경)이다. 한쪽에서는 확장적 재정 정책을, 다른 한쪽에서는 증세를 단행하는 모순이 벌어진다.
이는 시중 유동성을 축소하는 통화정책인 금리 인상과 추경이 상충하는 것과 비슷하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관계자는 “올해 추경을 하는 상황에서 소득세율 인상은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과 반대되는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정부의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인 ‘넓은 세원, 낮은 세율’과 충돌하는 것도 논란거리다. 2012년 33%에 불과했던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은 2015년 46.5%로 꾸준히 상승했다. 역으로 고소득자에 과세가 집중된 셈이다.
국회 기재위 전문위원실이 국세통계시스템의 과표 구간 실효세율을 분석한 결과, 1억∼3억원은 22.9%인 반면 5억∼10억원은 32.7%로, 고소득일수록 과세 집중도가 높았다. 선(先) 비과세·감면 정비 주장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최근 5년간 지속적으로 고소득자에 대한 세 부담을 강화한 것도 논의 대상이다. 기획재정부 자료를 토대로 한 ‘2011년 대비 2015년 주요 세목 세수변동 현황’을 보면, 근로소득세의 증가율은 47.1%인 반면, 법인세는 0.3%, 부가가치세는 4.3%였다.
우리나라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3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35.5%(2015년 기준)보다 높다. 1984년과 1986년 시작된 영국과 미국의 세제개혁 결과였다. 이왕재 나라살림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더 중요한 것은 세출 개혁”이라며 “문재인 정부의 세제개편 성공은 여기에 달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