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 기자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 도발로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구상이 시동을 걸기도 전에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초안에서 수위 조절이 불가피하지 않겠느냐”며 “문 대통령이 직접 연설문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북한의 ICBM 미사일 도발로 한반도를 둘러싼 엄중한 안보 상황이 격랑 속으로 빠져든 데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압박의 목소리도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는 제재·압박과 별개로 대화 기조는 유지한다는 방침에 따라 대화의 복원을 골자로 한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지금 상황에서는 맞지 않는다는 현실적 판단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국민과 정치권은 물론이고 함께 북핵 문제를 풀어가야 할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열강의 동의를 받기도 어려워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쥐고 남북관계를 이끌어 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이에 대한 동의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받아냈다. 북한이 1차적으로 핵동결을 선언만 해준다면 조건 없는 대화에도 응하겠다며 남북 대화 가능성까지도 열어놨다. 평창동계올림픽 남북단일팀 구성과 선수단 동시 입장 등의 스포츠 교류 등 민간교류에도 본격 시동을 걸어 화해 무드 조성에도 주력해왔다.
10년 만의 민주정부 출범으로 다시 남북 화해와 한반도 평화를 일궈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겠다는 문 대통령의 야심찬 포부는 통일을 이룬 독일에서 ‘신베를린선언’으로 구체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북한의 미사일 도발로 문 대통령과 청와대의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됐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독일로 출국하기 전 성남 서울공항 귀빈실에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과 함께한 자리에서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누란의 위기"라며 "발걸음이 무겁다"고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방문 때와 마찬가지로 전용기 앞에 참모들이 도열한 모습은 볼 수 없었고 앞서가는 문 대통령 내외의 뒤를 참모들이 자연스럽게 따랐다. 심경이 복잡한 듯 문 대통령은 좀처럼 굳은 표정을 풀지 않고 걸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이 국면에서 평화를 얘기할 수 있겠는가"라며 "'베를린 선언' 같은 거창한 것은 없다"고 못 박았다.
결국 북한의 이번 도발을 두고 '무력도발은 원천봉쇄하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진 만큼, 독일 연설에서는 이를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데 무게가 실리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우세하다.
다만 북한이 이번 도발을 감행했다고 해서 단계적 해법 방식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기는 어렵다.
문 대통령이 계속 밝혀온 대북 관계의 큰 원칙이 대화와 제재·압박의 병행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번 연설에서도 대화의 가능성은 여전히 열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한·미 정상회담때 밝혔듯이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 해결을 위해 한국이 주도권을 갖고 외교전에 적극 나서겠다는 입장도 재천명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한·미 미사일 연합 무력시위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먼저 제안해 실행에 옮긴 것도 남북관계에서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인 것이라는 해석이다.
문 대통령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미·중·일·러 등 관련 당사국 정상을 비롯해 유엔 등 국제사회와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한 제재 등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방독 이틀째인 6일 오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첫 정상회담을 갖는 데 이어 저녁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초청으로 열리는 한·미·일 정상 만찬회동에 참석한다.
또 G20 회의 기간 7일 오전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오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을 갖고, 8일에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맬컴 턴불 호주 총리 등 10여개국 정상과의 회담 일정을 조율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