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양균식 경제정책 큰그림…“기업가정신 펼치도록 정부가 경제철학 바꿔라” 조언

2017-06-21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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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시절 첫 국가장기발전전략인 ‘비전2030’ 수립을 주도한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세번째 저서 '경제철학의 전환'.
 

아주경제 현상철 기자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며 참여정부 시절부터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들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구상하고, 계획하고, 펼쳐온 방안들이 재조명받고 있다. 9년 만에 진보정권이 들어서며 그간 통용돼온 경제정책 향방이 대전환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점은 문재인 대통령이 바라보는 시선과 정책적 방향을 결정할 철학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런 시기에 문재인 정부의 철학, 특히 경제철학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출간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참여정부 시절 함께 일하며 경제정책을 진두지휘했고 첫 국가장기발전전략인 ‘비전2030’ 수립을 주도한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세번째 저서 ‘경제철학의 전환’이다. 경제정책에 새 정부의 철학을 투영하는 데 참고서 역할을 하게 될 변 전 실장의 저서를 통해 향후 한국경제의 과제와 대안, 나아가 철학을 미리 살펴본다.

“나는 노무현 정부에서 ‘비전2030’ 수립을 주도했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서두에서 10여년 전 정치적으로 폐기되고 외면받은 보고서 ‘비전2030’ 수립에 참여했던 점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는 이 보고서가 말하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상위 목표는 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바로 국민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배분과 성장이 균형을 갖춰 건강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단,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수단이 달라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달라져야 할 수단을 한국경제에 적용하기 위해 변 전 실장은 우선 경제철학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케인스→슘페터’로 전환··· 슘페터식 경제정책은 ‘기업가 여건 조성’

슘페터식 경제정책은 한마디로 기업가가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다. 기업가가 ‘기업가정신’으로 꾸준히 신결합‧창조적 파괴를 해야 혁신적인 공급이 가능해지고, 이를 통해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는 방법론이다.

휴대전화의 새로운 버전이 주기적으로 나오듯이 혁신을 통한 상품‧서비스의 무궁한 공급은 꾸준한 수요를 불러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슘페터가 말하는 경영인이 아닌 기업가는 토지‧노동‧자본을 결합하는 일을 직분으로 삼는 ‘제4의 인격체’다.

이 책이 주장하는 핵심은 어디까지나 슘페터가 말한 기업가정신이 꽃필 수 있는 바탕을 만드는 곳에 재정지출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정부를 ‘시장개입‧시장주도자’로만 한정하지 말고, ‘혁신생태계 조성자’ 역할도 충실히 하자는 것이다.

변 전 실장은 그러나 기업가가 한국에서 혁신활동을 하는 데 제약이 너무 많다고 아쉬워한다. 이를 해소해주는 게 정부의 역할인데, 현재 한국은 통화‧재정정책을 혼합해 총수요를 관리하는 ‘케인스식 경제정책’을 따르고 있어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다.

케인스식 경제정책은 이미 한계에 달했다는 게 변 전 실장의 판단이다. 한국경제의 저성장과 성장잠재력 하락은 구조적 문제에 기인하는데, 케인스식 경제정책은 단기정책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대통령 임기가 짧고, 정책의 계량화가 가능하며, 즉시 효과를 볼 수 있어 지금껏 활용됐지만, 현 시대에는 중장기적인 구조개혁과 성장잠재력 확충이 필요해 케인스에서 슘페터로 경제정책의 철학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설명이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바치는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참회의 기록이자, 참모로서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 철학과 가치와 사상과 원칙을 알린 저서 '노무현의 따뜻한 경제학'.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나

변 전 실장이 말하는 슘페터식 혁신은 ”저성장 시대에 성장을 가능하게 하며, 양극화‧빈부 장벽을 해소해 사회안정을 이루고, 우리나라를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는 종합처방”이다.

이를 위해 기업가정신의 발현 여건을 조성해줘야 하는데, 기본조건으로 △노동의 자유 △토지의 자유 △투자의 자유 △왕래의 자유 등 네 가지를 제시했다.

기업가가 신결합‧혁신을 수행하는 주체이기 때문에 생산요소(토지‧노동‧자본)의 자유로운 결합 결정권도 부여돼야 한다는 슘페터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변 전 실장은 우선 노동의 자유를 가장 핵심으로 꼽았다. 노사 모두를 위한 자유로, 노동 유연성보다 넓은 개념이다.

기업가를 위해 비정규직‧파견직 등의 규제를 완화해 유연성을 높이되, 노동자를 위해 실업보험 외 주거‧교육‧보육 3대 분야를 정부가 책임지는 게 ‘노동의 자유’ 골자다.

기업가 입장에서 노동의 자유를 향유하기 위해 필요한 재원은 내년부터 2022년까지 125조2000억원, 노동자 입장에서는 162조8000억원으로 추산했다.

일반회계 구조조정, 소득세 형평화, 조세감면 축소, 부가가치세 인상 등으로 확보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토지의 자유는 국내 토지이용규제의 대폭 완화다. 변 전 실장은 “한국에서 가장 정당화될 수 없는 부(富)가 땅부자들의 공짜 부동산 이익”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비정상적인 부동산가격은 인색한 토지 공급정책에 기인한 것이라고 꼬집는다. 도시적 용도로 사용가능한 토지는 전 국토의 7.2%에 불과하다.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고, 이익은 지방과 공유하는 한편, 토지공급펀드를 만들어 지자체가 토지를 매입하고 투자사업에 공급을 책임지는 방안을 제시했다.

“금융혁신이 있어야 ‘제4의 인격체’가 산다”며 투자의 자유도 강조했다. “기업의 자금 공급원인 은행이 ‘전당포 영업’에 안주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벤처투자를 늘려야 생태계 조성이 가능한데, 민간금융기관은 투자에 매우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벤처‧중소기업부 신설, 산업은행의 벤처투자 전문 금융기관 전환, 중소기업 대출에 정부의 신용위험 부담 등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노동의 자유로운 출입국, 나아가 우수한 노동력 확보를 위해 왕래의 자유 확대 역시 필수라는 입장이다.

노동의 유연성, 혁신기반 신성장모델 창출을 위해 인적‧자본‧기술이 다양하고 풍부해야 하는데, 한국 자체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이민정책 컨트롤타워인 ‘이민청’을 설립하고, 해외 고급인력 유치 인센티브 등을 국경이 아닌 시장에 맡기는 노동시장의 개방정책 추진을 주장했다.

동시에 해외투자 유치를 확대하기 위해 경제자유구역을 전략산업별 특화 클러스터로 재편하고, 파격적인 법인세 감면을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해외투자유치청’ 설치도 제안했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진보적인 경제담론을 담은 저서 '어떤 경제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비정규직 확대-그린벨트 폐지-법인세 감면··· 文정부와 괴리

변양균 전 정책실장의 ‘경제철학의 전환’은 새 정부의 경제철학과 지향해야 할 최종 목표를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현재 문재인 정부의 방침과 어긋나는 제안이 눈에 띈다. 대표적으로 ‘비정규직의 활성화’다. 변 전 실장은 청년‧여성을 일단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이는 게 최우선이기 때문에 시간제 정규직‧임시직 등 다양한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간제‧파견직 등 비정규직 고용기간도 2년에서 4년으로 늘려야 한다고 했다. 사실상 정부의 일자리 기조와 반대되는 목소리를 낸 셈이다.

반대로 노동자의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해 주거부문의 대폭 확장도 주문했다. 5년간 330조원을 들여 공공임대주택 286만호를 공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사업비는 정부의 재정, 주택도시기금, LH가 분담토록 했지만 사실상 정부 부담이다.

수도권 규제 완화와 그린벨트 폐지도 도시집중을 가속화시키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참여정부는 혁신도시 등 국토 균형발전 전략을 펼쳐왔다. 현행 24.2%인 해외기업의 법인세도 싱가포르(17%) 수준으로 끌어내리자고 했다.

이상적인 목표는 긍정적이지만, 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상호간 사회적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다.

변 전 실장은 “노동의 자유를 위한 시책의 경우 실업급여는 증가하고 기간이 연장되는 반면, 노동의 자유는 확보되지 않는 등 이해집단이 단 부분만 받아들이고 쓴 부분은 뱉어버리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국회에서 법률 통과 자체를 패키지로 진행하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며 “우리나라 국민이 쌍방간 이 정도의 약속은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수준이라고 낙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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