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해운대, 광안리, 태종대…. 바다가 바로 보이는 탁 트인 평지, 부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혹자는 부산에 대해 '생각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리는 명소가 많은 만큼 어딜가든 평평할 것'이라고 단정짓는다. 그러나 기실 부산은 평지보다 산이 많은 동네다. 집 지을 땅도 별로 없는 산에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경사 급한 계단이 많은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여행조교 손반장'으로 유명한 손민수 ㈜부산여행특공대 대표는 산복도로를 포함한 부산 원도심 여행프로그램을 최초로 기획하는 등 부산여행 전문가로 통한다. 그런 그가 산복도로 곳곳을 친절하게 안내하고,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가슴으로 전해주는 특별한 부산 여행서인 '산복도로 이바구'를 내놓았다.
산복도로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다양한 흔적을 지니고 있는 데다 걸으면 걸을수록 아름다운 경치를 만끽할 수 있어 여행자는 물론이고 각종 언론의 각광을 받고 있다. 감천문화마을부터 초량 이바구길, 168계단, 임시수도기념관,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최민식 갤러리, 천마산로, 흰여울마을까지 산복도로를 통해야만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비경(秘境)은 무궁무진하다.
이 책이 여느 여행안내서와 다른 것은 미세하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절대 볼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저자는 초량 이바구길에 다음과 같은 회포를 남긴다.
"거칠고 주름진 그녀의 손을 통해 너무나도 물이 귀했던 이 산동네에서 저 아래의 우물을 오가며 뿌려졌을 수많은 어머니들의 눈물을 훔쳐본다. 벗겨지고 깨어진 시멘트 바닥의 작은 풀들을 보면서 가족들을 위해, 생계를 위해 부두를 오가며 그 힘든 노무 일을 하셨던 아버지들의 땀들이 생명수가 되었음을 생각해본다."
도심과 산동네를 이어주는 아찔한 경사의 '168계단'을 느끼는 대목도 마찬가지다.
"당시 어머니들은 이렇게 우물에서 물을 길어 계단을 힘겹게 올랐고, 아버지들은 지금처럼 높은 건물이 없을 때 산동네 집에서 하루 종일 바다를 보는 게 일이었다고 합니다. 바다를 보다가 배가 딱 들어오면 지게 하나 메고 미친 듯이 이 계단을 뛰어 내려오셨다고 합니다."
물론 자신이 잘 모르는 지역을 제한된 시간 동안 여행하며 무언가를 속속들이 알 수도 없고, 꼭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부산 맛집 TOP 10', '최단시간 부산 알짜배기 즐기기' 등의 인터넷 글을 섭렵하고 나서 휙 하니 돌아봐도 여행은 '여행'이다. 그러나 스토리가 묻어 있는, 소박하고 따뜻한 여행에 목마른 사람이라면 저자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뚜벅뚜벅 걸어봐도 좋겠다.
"부산의 알려진 명소보다 부산을 살아간 사람들의 애환과 그리움, 그 속을 살아갔던 그리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역사, 개인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는 부산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산복도로와 원도심의 골목골목을 두 발로 걷고 두 눈으로 다시 밟으며 부산의 속살에 묻어나는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혹시 또 모른다. 산복도로 골목 귀퉁이에서 저자처럼 이런 말을 중얼거리며 다음 행선지를 궁리하는 그 누군가를 만날지.
296쪽 |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