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인사청문회의 명암(明暗)

2017-06-04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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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


한 때, 글을 쓰기 위해, 현 세태를 ‘콕 집어’ 대변할 수 있는 고대 중국의 고사성어나 해외 석학의 아포리즘(격언)을 끌어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언론계 선배들의 글이 늘 그렇게 했기에 으레 칼럼(column)에는 그런 ‘상징적인 지혜’가 들어가야 좋은 글로 스스로 인식했다.

국어사전은 칼럼을 순화해 시평(時評) 혹은 시사평론(時事評論)으로 부르도록 권했다.
글을 쓸수록, 쓴다는 것의 힘듦을 깨닫는 한편으로 기계적으로 뇌가 작동해서 긁적여지는 글도 나오게 된다. 현 세태를 꼬집는 글을 쓰면서, 옛 시대의 지혜를 끌어오는 것은 다소 현학(衒學)적인 측면도 깃들어 있을 것이다.

맵고, 짜고, 신 맛 등 갖은 양념의 음식에 길들여진 혀에 담백한 맛은 밋밋하게 느껴질 것이다. 글이 점점 다양한 기교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 정작 정직하고 담백한 정신을 놓칠 수도 있을 것이다. 들어가는 말이 길었다. 오늘은 그냥, 담백한 글을 쓰자고 한 변명치고는 너무 긴 사설이 돼버렸다. 스스로에 대한 경계(警戒)로 글을 시작한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지만,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새로운 내각을 구성하는 조각(組閣) 작업이 순조로운 항해를 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 여야 간 공방으로 연일 정치권이 시끄럽다.

여야 공방의 중심에는 인사청문회가 있다. 공직자 후보의 자질과 정책능력, 도덕적 검증을 위해 도입된 인사청문회는 그동안 수많은 공직 후보자들을 낙마시켰고, 그로 인해 공직 사회의 규범이 새로 만들어지는 계기를 만들었다.

인사청문회는 특히 시민들에게는 높은 도덕적 잣대의 눈을 갖게 해줬다. 이런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춰 문재인 대통령은 10대 대선 공약에 ‘고위공직자 후보 배제 5대 원칙’을 포함시키기에 이른 것이다.

잇따른 낙마 사태를 지켜보면서 정치권은 현행 인사청문회가 지나치게 개인의 도덕적 검증에 치우치고, 정책이나 자질 검증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이 같은 정치권의 지적은 기필코, 잘못된 인식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개인의 능력과 자질은 도덕적 가치 위에 기반을 둬야 한다. 도덕을 바탕 한 인격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능력과 자질은 기능인에 불과하다.

고위공직자는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자리면서도 동시에 한 나라의 국정 운영에 참여하는 주요한 자리다.

고위 공직자가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해도 시민들의 도덕적 잣대에도 미치지 못한 삶을 살아왔다면 마땅히 그 자리를 탐내서는 안 된다. 그냥 기능인에 머물러야 한다.

촛불시민혁명으로 탄생했다고 자부하는 문재인 정부가 촛불시민혁명을 만든 시민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다면 더 이상 촛불시민혁명을 끌어대지 말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이라도 시민들의 눈높이가 너무 높아, 도저히 그 높이에는 맞추기 힘들겠다면 지금이라도 내려놓아야 한다.

정상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 정말, 필요하다면 시민들에게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소상하게 설명해야 한다. ‘빵 한 조각과 닭 한 마리’의 사연으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것이 아니다.

시민들은 ‘아직은 때가 아닌가보다‘하며 더 이상의 기대를 하지 않고 ’새로운 시대‘를 당장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 무엇을 해도 높은 지지율 속에 순항을 할 것 같지만, 첨예한 정치적 대립 구도 속에 120석의 국회의원 의석수로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을 시민들도 알고 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상황을 진심을 다해 설명하는 자세이며, 그러한 현실을 타개하겠다는 노력과 의지의 표명이다.

인사청문회는 이번 주에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문 대통령은 개별 청문회에 일희일비 하지 말고, 원칙을 세워 대응하고 상대방의 의견에 대해서도 충실하게 듣는 자세를 가지길 바란다.

현학을 잠깐 빌자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라’는 말을 되새기길.

[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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