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나가 밝힌 복귀 이유는 어머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다.
장하나의 어머니 김연숙(66) 씨는 장하나가 LPGA투어에 진출한 뒤에는 1년에 340일을 혼자 지냈다고 한다. 아버지 장창호(65) 씨는 미국 현지에서 장하나를 뒷바라지했다.
김 씨는 "혼자 먹자고 뭘 만들어 먹기도 뭣해서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않게 되더라"고 말했다. 이런 어머니를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한국에 들어와 선수 생활을 하기로 했다고 장하나는 밝혔다.
LPGA투어에서 뛰다 국내 무대로 복귀한 선수는 장하나가 처음은 아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는 LPGA투어를 접고 국내로 돌아와 뛰는 선수가 6명에 이른다.
하지만 이들은 LPGA투어에서 버티지 못해서 밀려난 경우다.
장하나는 다르다. 장하나는 올해 호주여자오픈을 포함해 3차례 톱10 입상에 상금랭킹 11위(35만9천 달러), 세계랭킹 10위를 달릴 만큼 잘 나가는 선수다.
이런 선수가 LPGA투어를 접은 사례는 신지애 이후 두 번째다. 둘의 LPGA투어 카드 반납으로 여자 골프 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LPGA투어의 고단한 이면이 세상에 알려졌다.
LPGA투어에서 뛰는 건 '장돌뱅이 신세나 다름없다'고 한탄하는 선수가 많다.
LPGA투어는 4라운드 대회로 채워져 있다. 전에는 3라운드 대회도 더러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선수들은 일요일 최종 라운드를 마치면 짐 꾸리기에 바쁘다. 서둘러 다음 대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서다.
가능하면 일요일 저녁에 출발한다. 다음날 길을 나서면 일요일 저녁이 조금 여유가 있지만, 월요일에 이동하면 화요일 연습 라운드와 수요일 프로암, 그리고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이어지는 대회일정을 감안하면 유일한 휴식일을 이동하는 데 다 써야 한다.
이동 거리도 만만치 않다. 10시간이 넘도록 자동차를 타고 가는 일은 다반사다.
그나마 월요일도 온전히 쉬지는 못한다. 후원 기업 행사 등 개인적인 일은 월요일에 집중된다. 대회 코스를 한 번이라도 더 돌아보려고 월요일 하루도 대회 코스에서 보내는 선수도 많다.
장하나는 미국에 집에 없었다. 늘 호텔이나 빌린 집 신세였다. LPGA투어에서 뛰는 한국 선수 상당수가 집 없이 호텔이나 빌린 집을 옮겨 다닌다. 게다가 언어와 관습이 다른 외국이다.
어차피 집을 마련해도 시즌이 끝나는 초겨울이나 되어야 들어갈 수 있기에 그렇다.
장하나는 "연습이나 대회가 끝나고 방으로 돌아와 씻고 누우면 말할 수 없는 허전함이 몰려왔다"고 털어놨다.
온 가족이 이런 생활에 매달리다 보면 몸과 마음이 지치지 않을 수 없다.
신지애와 장하나의 LPGA투어 포기는 새로운 시대의 등장을 알리는 예고편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여자 골프는 선수와 부모가 다 같이 '세계 최고'를 목표로 앞만 보고 달렸다.
이들의 롤모델은 박세리였다.
빠르면 초등학교 저학년, 늦어도 중학교 1학년 때 골프채를 손에 쥔 선수는 골프 연습 말고는 '딴짓'을 해서는 안 되는 세월을 10년 이상 보내야 했다. 그리고 누구나 다 목표는 LPGA투어에 진출해 우승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세계랭킹 1위나 명예의 전당을 목표로 삼는다.
정작 박세리는 "앞만 보고 뛰다가 문득 돌아보니 골프 말고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게 나였다"고 말한 바 있다.
지금까지 세계무대를 휘저은 한국 여자 골프 선수들의 삶은 다 박세리와 다를 바 없었다. 드물게 삶의 균형을 이룬 선수도 있지만, 대다수는 그랬다.
장하나는 "LPGA투어에서 네 번이나 우승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점점 더 허전해졌다"고 고백했다.
수백 번, 수천 번 자문한 끝에 장하나는 "행복해지려고" LPGA투어를 접기로 했다고 밝혔다.
장하나는 박세리 이후 수많은 여자 골프 선수들이 걸었던 길을 접었다.
국내 대회는 대다수가 3라운드로 열린다. 수도권에서 열리는 집에서 출퇴근도 가능하다. 대회 장소 이동에도 대부분 반나절이면 가능하다.
장하나는 "아무래도 시간 여유가 많아질 것"이라면서 "어머니와 맛있는 음식도 먹으러 다니겠다"고 다짐했다.
'성적'과 '돈'이 아니라 '가족'과 '행복', 그리고 '여유'를 선택한 장하나는 지금까지 우리가 보지 못했던 여자 프로 골프 선수의 새로운 모델이 될지도 모른다.
새 시대가 열린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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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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