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대북정책의 큰 그림은 인도적 지원을 시작으로 남북관계 복원에 나선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국제적인 제재가 완화되면 점차 교류를 확대해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안정을 찾는다는 데 있다. 이를 위한 첫 관문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제언이다.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한반도평화포럼 상임대표는 22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개성공단 재개나 금강산 관광 재개가 남북 당국 간 고위급 회담이나 정상회담보다 선행돼야 한다"며 "'민간차원의 경협 재개 내지 복원'이라는 입구로 들어가서 '남북 간 장·차관급 회담'이라는 과정을 거쳐 '정상회담'이라는 출구로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이어 "이렇게 해서 다시 '정상회담'이라는 입구로 들어가 '비핵화'란 출구로 나와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장관은 과거 1994년 제네바 합의에 따라 북한의 핵동결을 조건으로 원자력발전소를 제공키로 했던 대북 경수로 건설사업 때 북측 근로자의 인건비를 거론하면서 개성공단의 의미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는 "당시 제네바 기본합의에 근거해 1996년부터 시작됐던 경수로 원자력발전소 공사에 투입되는 북측 인건비를 논의할 당시 북측은 월 300달러를 요구해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우리 측이 80달러로 조정을 요구한 뒤 국제시세를 참고하라고 북측에 전달했다. 북측에 중국, 베트남과 비교해 터무니없이 비싼 인건비는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만큼 조정에 들어갔고, 북측에 소위 '돈맛'을 알게 하기 위해 100달러로 상향 조정했던 사실을 언급했다.
정 전 장관은 "일종의 물질 자극적 방식으로 북한 사회가 개방으로 빨리 나오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임금을 조정했고 지난 2002년 개성공단 북측 노동자 임금 책정은 같은 방식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2002년 개성공단 가동에 앞서 북측 인건비 협상을 할 당시 북측은 경수로 사업 때와 마찬가지로 300달러를 요구했다"며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중국이나 동남아 시세를 보고 왜 남측기업들이 동남아 진출을 하는지 따져보라고 북측과 협상한 바 있다"고 말했다.
"당시 중국과 베트남의 경우 인건비가 각각 80, 60달러 수준일 때였다"며 "그런 후 북측이 65달러로 합의하면서 단, 매년 5%의 상승폭을 제시했다"고 정 전 장관은 말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그 이후의 북측 협상 방식이었다.
정 전 장관은 "그런 후 채 한 달도 안 됐을 때쯤, 북측에서 먼저 57.5달러에서 시작하자고 제안이 왔다"고 말했다.
이는 북측 자신들도 저임금의 장점을 살려야 외국기업들을 더 많이 유치할 수 있는 만큼 저임금이 경쟁력이란 사실을 인식, 북측이 고용증대 효과를 누릴수 있을 거라고 계산한 계기라는 설명이다.
정 전 장관은 이에 대해 "나름대로 자본주의 마인드가 들어간 것으로 개성공단에는 그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 전 장관은 이어 "물론 이번에 다시 가동하게 되면 분명 100달러를 요구할 것"이라며 "임금 재협상과 더불어 신변안전 등을 포함한 재발방지가 핵심 협상 사안"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움직임이 거세지는 가운데 개성공단 재가동에 따른 부담에 대해선 "별개의 문제"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미국은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서라면 북·미 정상회담도 한다고 하는데, 비핵화를 위해 북·미 정상회담을 한다는 건 '비핵화'라는 출구로 나오기 위해 '북·미 정상회담'이란 입구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 게 아니냐"며 "그런데 우리는 왜 꼭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면 북핵 문제 해결부터 해야 한다는 조건부터 거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정 전 장관은 또한 "금강산 관광비와 개성공단 인건비가 유엔제재안이 금하는 ‘벌크 캐시’에 해당하는가에 대해선 이미 2014년 박근혜 정부도 ‘해당없다’고 해석한 이상 새 정부는 책임감을 가지고 소신있게 대북정책을 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미 노후화된 개성공단 내 기계와 숙련된 노동력의 중국 이탈 문제에 대해선 우려하지 않았다.
정 전 장관은 "개성공단에서 숙련된 노동자들이 일부는 중국 단둥, 훈춘 쪽으로 가서 중국인이 경영하는 소규모 공장의 노동자로 취업했을 수는 있지만, 개성공단 5만4000명의 노동자는 주로 개성 거주자"라며 "신의주를 거쳐 단둥으로 가거나 두만강 건너 훈춘 쪽으로 가는 사람들은 그 근처 사는 사람들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울러 "단둥, 훈춘 근처의 공장은 대부분 노동집약적 산업이고 숙련도가 낮아도 상관없는 일들이라 인건비 때문에 이들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다시 공단으로 돌아오기 힘들다는 것은 기우"라고 말했다.
그는 끝으로 "이들(근로자)이 이미 돌아올 준비가 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