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차이나 김봉철 기자 = “한·중 관계는 1992년 수교 이후 다방면에서 많은 성과를 이뤄왔으며 이러한 관계 발전의 잠재력은 아직도 무궁무진하다. 한·중 간 신뢰를 회복함으로써 실질적인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 후 지난 11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의 전화통화 중 향후 양국 간의 관계 설정을 강조한 말이다.
먼저 전화를 건넨 시 주석은 한·중 관계 발전 방향과 관련해 “양측은 수교할 때의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며 “구동화이(求同化異)를 위해 노력하자”고 강조했다.
시 주석이 언급한 ‘차이점’은 미묘한 차이로 보이지만,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 한·미동맹을 버릴 수도, 중국과 단교할 수도 없다. 일종의 ‘딜레마’인 것이다.
문 대통령은 9일 당선 이후 미·중·러·일 4강 외교 복원을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이 가운데 중국은 가장 적극적인 화해 제스처로 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나타냈다. 시 주석이 직접 전화를 걸어 당선을 축하한 일도 이례적인 일이다.
청와대 측은 중국 국가주석이 우리나라 대통령 취임에 맞춰 축전 등을 보낸 적은 있지만 직접 축하 전화를 걸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측은 이날 시 주석이 문 대통령에게 보낸 당선 축전을 인민일보 1면에 싣는 등 양국관계 개선 의지를 내비쳤다.
학계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중국이 사드 출구전략을 시작했다는 사실에 대해 전반적으로 공감대를 나타내면서도 섣부른 낙관론을 경계했다. 양국의 대통령이 바뀌었다는 사실 외에 배치와 철수로 양분된 ‘제로섬 게임’의 기본 갈등 구조는 변함이 없어서다.
12일과 성균중국연구소 주최로 서울 성균관대학교에서 진행된 ‘새 정부의 대중국 정책’ 세미나에서는 이 같은 기대감과 우려감이 그대로 나타났다.
기대감은 전반적인 시 주석의 전화로 시작된 중국의 태도 변화에 주목한 것이고, 우려감은 북한을 둘러싼 미·중 관계 변수에 기인했다.
이정남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는 “한·중이 수교를 맺은 지 25년을 넘으면서 중국의 비약적인 경제발전으로 더 이상 한국이 경제교류 강화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경제 문제보다 이제는 외교·안보의 비중이 커졌다”면서 “중국이 출구전략을 찾고 싶어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차창훈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사드문제 협상력 제고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중국의 사드 출구전략이 시작된 것도 맞고, 포괄적 접근방법으로 해결해야 하는 데 동의하지만 임기 초반부터 밀어붙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서정경 성균중국연구소 연구교수는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와는 반대로 트럼프 정부는 적극적인 압박과 관여를 하고 있다”면서 “아무리 트럼프 정부가 강력한 압박과 관여를 주장해도 결국 대화로 압박하는 수밖에 없다고 봤을 때 한국과 미국 정권교체는 한국의 안보 전략 확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이동률 동덕여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는 “한·중 관계가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넘어가면서 갑자기 좋아졌다가 다시 안 좋아진 전례가 있다”면서 “시진핑 주석이 먼저 전화했다는 등의 의전적 외교에 집중하기보다는 본질적인 관계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현대 외교는 다자외교 시대라서 한국과 중국 관계가 단순히 좋아진다고 양국 관계가 안정을 찾을 순 없다”면서 “방향은 맞는데 어떤 출구가 돼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사드 출구전략이 너무 빨리 진행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역할도 역할이지만, 협상에 나서려면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확보하는 것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회를 맡은 문흥호 한양대 중국문제연구소장은 “새 정부 들어 사드로 틀어진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다”면서 “단시간에 외교적 성과를 거두려는 조급함이 느껴지는데 우선 대중 외교 전략에 있어서 이전 정부가 잘못한 점부터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