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세계 유일의 제주 전통 돌가마(石窯·석요)가 날로 훼손되고 있어 보호 대책이 시급하다.
지키고 보전해야 할 중요한 제주의 돌 문화유산임에도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언제 사라질지 모를 위기에 처해 있다.
◇ 쓰레기 더미에 묻힌 돌가마 흔적
"보세요! 박물관에 있어야 할 문화재들이 이런 곳에 버려져 있습니다."
지난 15일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 인향동의 한 농로 옆 쓰레기 더미에서 제주 전통 옹기와 기와를 굽던 돌가마의 파편이 속절없이 나뒹굴고 있었다.
48년 전 맥이 끊긴 제주 전통 옹기를 복원하고 답사·연구해 온 제주도예촌 강창언(59) 촌장은 할 말을 잊은 듯 쓰레기 더미 속에서 옛 돌가마의 흔적을 뒤적였다.
조선 중기 것으로 보이는 항아리 파편, 기와 파편과 함께 강 촌장이 들어 보인 돌 조각에는 1천도 이상의 높은 온도에서 돌이 용암처럼 녹아내린 흔적이 남아있었다.
돌가마의 재료로 쓰인 돌(요재·窯材) 파편은 이곳에 돌가마가 있었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증거 자료가 됐다.
"저기 100m 넘어 돌가마가 있었는데, 10여년 전 밭 주인이 경작지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하루아침에 사라졌어요. 기와를 만드는 돌가마 중에서도 완전한 형태를 확인할 수 있었던 곳이었는데…."
이곳 인향동 돌가마터에서는 인근 대정향교의 막새(기와집의 추녀끝 장식)와 같은 모양의 기와가 발견돼 당시 향교·관아의 기와를 직접 생산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 결정적인 물질적 증거를 지금은 돌이킬 수 없게 됐다.
강 촌장은 당시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쉬움이 남는 듯 "수십년 전부터 보존의 필요성을 누누이 제기했지만, 행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약 200m 떨어진 곳에 있는 또 다른 돌가마는 잡풀과 잡목으로 뒤덮여 형체를 알아보기는커녕 접근조차 힘들었다. 게다가 인근에 공사가 진행 중어서 대형 중장비에 의해 언제 사라질지 모를 위기에 처해 있었다.
제주시 한경면 산양리 속칭 '조롱물'에 있는 돌가마는 현재까지도 원형이 비교적 잘 남아있었지만, 과거 인근에 길을 내는 과정에서 가마 앞부분이 포크레인에 의해 파손됐고, 가마 중간 부분은 허물어져 구멍이 나 있었다.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돌가마의 운명은 이렇듯 언제 사라질지 모를 '풍전등화'의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돌가마라 해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 한 도로변에 있는 돌가마(제주특별자치도 지정 기념물 제58-4호)는 보수과정에서 오히려 원형을 잃었다.
가마의 일부 꺼진 지붕을 보수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돌 대신 콘크리트를 덧발랐고, 받침목을 안에 세워둔 상태로 10여년간 그대로 방치됐다. 문화재를 보존하기는커녕 오히려 훼손했음에도 행정은 담당자가 바뀌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전혀 바로잡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신도리 돌가마에 있는 안내문은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천장 부분 뒤쪽에 콘크리트로 5m가량 보수한 후 흙을 덮어 외관상 가마형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국어와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4개국어로 소개하고 있다.
◇ "보호가 우선…학술적 규명도"
제주의 돌가마는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통방식으로 그릇, 도자기 등을 구울 때 국내 다른 지역은 물론 중국과 일본 등은 모두 흙으로 된 가마(흙가마)를 사용했지만, 제주에서는 유일하게 현무암을 쌓아 만든 돌가마를 만들어 썼다.
제주의 돌가마는 1천200도 내외의 고온에서 옹기를 굽는 노랑굴, 비교적 낮은 온도(900도 내외)에서 옹기를 굽는 검은굴, 기와를 굽는 기왓굴로 나뉘는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도요지(가마터)는 13세기 것으로 추정되며 20세기 중반까지 사용됐다. '굴'은 '가마'를 일컫는 제주방언이다.
노랑굴에서 구워낸 그릇들은 노란색이나 적갈색을 띠고, 검은굴에서는 진한 회색 또는 검은빛깔을 지니는데 이는 흙의 성질, 구워지는 온도 등에 의한 것이다.
1980년대만 해도 제주도 내에 돌가마터와 돌가마가 약 40여곳 정도 남아있었다. 이 중 20기의 돌가마가 비교적 형체가 온전했지만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대부분 파괴돼 현재는 노랑굴 6기·검은굴 1기·기왓굴 2기 등 9기만 남아있다.
이마저도 2002년 4월 11일 지정된 구억리 노랑굴(기념물 제58-1호), 검은굴(기념물 제58-2호)과 2005년 10월 5일 지정된 신평리 도요지(기념물 제58-3호), 신도리 도요지(기념물 제58-1호) 등 4곳을 제외하고는 거의 방치돼 있다.
제주 전통 옹기는 우리나라 내륙지방, 중국, 일본의 도자기나 옹기와 달리 유약을 바르지 않은 채 흙가마가 아닌 돌가마에서 바로 구워낸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광택을 더하고 물이 스며 나오지 않도록 표면을 코팅하는 역할의 유약을 바르지 않고 오로지 불의 힘만으로 옹기를 구워내기 때문에 통기성(通氣性·공기가 통할 수 있는 성질)이 좋아 옹기가 마치 살아 숨 쉬듯 하고 자연 상태에 가까워 인체에도 무해하다.
고려·조선시대의 제주 돌가마는 앞뒤로 길고 전후 단면 모양이 반타원형이며, 약간 경사가 있다. 길이가 짧은 것은 7m, 긴 것은 28m에 달한다.
특히 돌가마 앞쪽 부분에 원형의 '부장쟁이'라 하여 불을 때는 작업자들의 공간이 있고 굴뚝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대부분의 돌가마는 서귀포시 대정읍과 제주시 한경면 등 제주도 서쪽 지역에 몰려 있는데 이는 양질의 흙과 물, 땔감을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 촌장은 "돌가마는 세계에서도 제주에만 있는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이라며 "미국과 일본, 중국의 전문가들이 돌가마를 보러 제주를 찾고 있고 학술적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언제 사라질지 모를 돌가마들을 우선 보호하고 난 뒤 학술적으로 규명하는 일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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