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한준호 기자 = 지난달 21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17년 과학·정보통신의 날 기념식’에서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지목한 만화 ‘서기 2000년대 생활의 이모저모’가 화제가 됐다.
이 만화는 1965년 이정문 화백이 그린 작품이다. 최 장관은 이 만화를 소개하면서 “인터넷이 없던 52년 전에 태양열 지붕, 전기자동차, 스마트폰을 상상해 그려냈다”며 “상상에 불과했던 것들이 오늘날 현실이 되기까지 과학·정보통신의 끊임없는 도전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정문 화백은 정작 그 만화의 존재를 잊고 살았다. 이 화백은 “누가 '네이버에 선생님 만화가 돌아다니는데 한번 확인해 보라'고 연락을 해와 찾아보니 내 그림이더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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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화백이 이 만화를 그린 1965년은 미국과 러시아(소련) 두 강대국이 우주개발 전쟁을 벌였던 시기다. 미국이 위성을 쏘면 소련도 경쟁적으로 발사했다. 미국의 달 탐사선 아폴로가 사람을 싣도 달에 착륙한 것도 몇년 뒤인 1969년이다.
이 화백은 미국과 소련의 우주전쟁 소식을 당시 신문으로 접하며 “50년 뒤에는 우리가 저 우주선을 타고 달나라로 수학여행을 떠날 수 있겠구나”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스마트폰은 어떤 상상을 하며 그려냈을까? 이 화백의 상상 속 스마트폰은 6·25전쟁에서 국군과 미군이 북한군과 교전하며 무전기로 연락하는 모습을 보고 “저 무전기가 50년 뒤에는 크기가 더 작아지고, 그 당시 보급이 막 시작된 흑백TV도 함께 볼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소형TV 전화기라는 이름으로 스마트폰을 그려냈다.
이 화백은 “당시 이 소형TV 전화기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황당무계하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실제로 스마트폰이 나오지 않았냐”며 기자에게 되묻기도 했다.
이 화백이 소개한 ‘움직이는 도로’도 6·25전쟁의 기억에서 얻은 아이디어다. 수없이 많은 탱크가 서울시내 한복판을 달리는 것을 본 그는 탱크 차바퀴 둘레에 강판으로 만들어진 벨트가 감기며 돌아가는 무한궤도를 보고 “저 무한궤도를 더 길게 만들어 펼치면, 움직이는 도로를 만들 수도 있겠구나”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태양열 에너지는 초등학교 때 장난감이 없어서 가지고 놀았던 돋보기로 태양광을 모아 종이를 불태우며 놀다가 이 기술을 응용하면 에너지 발전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그렸다. 전기자동차도 1960년대 서울 시내를 달리던 노면전차를 보고 상상한 것이다.
이 화백은 52년 전 자신이 그린 미래 모습이 담긴 만화를 보면서 “세상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이렇게 변한다”며 “나는 예언가가 아니지만 공상과학(SF) 만화를 그리면서 얻은 과학에 대한 지식과 어릴 적 상상력으로 미래기술을 80% 이상 정확히 맞혔기 때문에 공상과 상상은 반드시 이뤄진다고 믿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정문 화백은 인터뷰 도중 또 다른 '2041년' 이라는 만화도 꺼내 보였다. 이 만화는 이정문 화백이 100살이 되는 해를 상상해 지난 2009년에 그린 미래 모습이 담긴 만화다.
이 만화에는 태양열이 모든 에너지의 80% 이상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과 함께 자동차가 80㎞ 이상의 속도를 내면 스스로 제어하는 '과속 방지 도로', 자율주행차,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입체 TV, 스마트폰의 진화 등이 소개됐다.
이 중에서도 이 화백은 "휴대폰의 변화가 이 만화보다 더 빠르다"며 스마트폰의 진화에 관심이 집중됐다. 그는 이 만화에서 그린 스마트폰의 진화된 모습에서 동시통역 기능, 음성으로 읽어주는 기능, 범죄 예방 기능, 질병 진단 기능, 고성능 망원경 기능 등을 추가했다.
지난해 이 화백은 친구들과 일본 전국 일주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 여행에서 스마트폰 동시통역 앱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일본어를 전혀 몰랐지만, 통·번역 앱으로 불편없이 7일 동안의 일본여행을 마무리했다는 것이다.
이 화백은 "내가 일본여행에서 번역 앱을 이용해 일본 사람들하고 기본적인 대화를 할 수 있었다"며 "2009년에 내가 그린 휴대폰의 동시통역 기능이 다시 적중했다"고 말했다.
이 화백은 "스마트폰은 정말 대단한 발명품"이라며 "스마트폰은 이제 필수품이고, 잃어버리면 생활을 할 수가 없게 될 정도"라며 스마트폰이 가져다 준 생활의 변화에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그는 "내가 꿈꾸는 것은 스마트폰을 능가하는 발명품을 구상해 만화로 그려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