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이소영 솔오페라단장 "문화는 천년의 지혜를 담는 그릇"

2017-05-12 06:01
  • 글자크기 설정

오페라 티켓 가격보다 공연의 수준이 중요해

오페라단 운영, 민간에서 정부 주도로 넘어가야

이소영 솔오페라단장 [사진=솔오페라단 제공]



아주경제 정등용 기자 =“교육이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하면, 문화는 천년의 지혜를 담는 그릇입니다. 눈앞에 닥친 상황만 보는 것이 아닌 긴 안목과 장기적인 관점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소영 솔오페라단장은 지난 9일 서울 마포구 오페라단 사무실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에 앞서 지난달 25일 열린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오페라계의 어려운 현실과 고통을 토로한 이소영 단장은 이날 인터뷰에서도 우리 오페라계의 가능성과 문제 개선 방안에 대한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한국 오페라 발전 가능성, 이탈리아·스페인만큼 무궁무진해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세계에서 대표적인 오페라 강국이다. 세계 3대 테너로 알려진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가 이 두 국가에서 배출됐고 엔리코 카루소 역시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이다.

특히,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오페라 강국이 된 데에는 훌륭한 오페라 가수 양성과 함께 그들이 마음껏 무대에 설 수 있는 극장들이 큰 몫을 했다. 베르디의 ‘나부코’ 푸치니의 ‘나비부인’ ‘투란도트’를 초연한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과 ‘라 트라비아타’ ‘리골레토’ 등을 초연한 베네치아 페니체 극장은 오페라 팬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 꿈의 극장이다.

이소영 단장은 한국이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오페라만큼 발전할 수 있는 이유로 반도적 특성에 주목했다. 그는 “과학적으로 한국인들의 비강(鼻腔) 크기가 이탈리아 사람들과 비슷하다. 비강의 크기가 적당해야 울림도 좋고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는데 그런 성대와 골격이 이탈리아, 스페인, 한국이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우리나라의 많은 민간 오페라단 수도 이 단장이 한국의 오페라 발전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이유 중 하나다. 이탈리아의 경우 13개 국립극장을 비롯해 시립극장, 왕립극장이 오페라계를 주도하지만 한국은 민간 오페라단 123개 단체가 오페라 공연계를 이끈다.

이 단장은 “외국 어느 나라를 봐도 우리나라처럼 많은 오페라단을 가진 나라가 없다. 특히 민간 영역에서 이렇게 하는 나라가 없는데, 그래서 더 발전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해외에서 볼 때 한국 시장의 잠재성도 크다”고 강조했다.

◆오페라 티켓은 비싸다? 결국 공연의 질이 중요해

오페라 공연의 티켓 가격은 그동안 오페라의 대중화를 막는다고 지적돼 온 해묵은 고민거리다. 이런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오페라단들은 오페라 페스티벌을 여는 등 여러 형태의 할인 방식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이는 공연의 질적 하락과 수익성 악화로 이어져 악순환이 반복된다.

보통 티켓 가격은 공연의 예산 대비 좌석 수, 할인율, 객석 점유율 등을 맞춰서 손익분기점이 되는 부분을 잡아 정해진다. 공연 무대의 사이즈, 배우의 출연료, 공연 콘셉트 등 모든 부분이 다양하기 때문에 그 비용과 티켓 가격 역시 이에 따라 다 다르게 형성된다.

이 단장은 “오페라의 가격이 모두 똑같아선 안 된다. 무조건 가격을 낮추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모든 오페라 공연이 고급일 필요는 없다. 바로크 오페라나 현대 오페라 중에서도 소규모로 해야 맛깔나는 공연이 있다. 그런 공연은 작은 극장에서 많은 예산 없이도 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의 지원 방식도 지적했다. 그는 “오페라계나 문화계에 대한 지원이 정치에서 추구하는 대중을 위한 복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저렴한 가격에 질 낮은 공연을 올리기보다 받을 가격을 정상적으로 받고 수준 높은 공연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역구별로 좋은 극장이 많이 만들어져 있다. 그런 곳에서 교육용 오페라, 어린이용 오페라가 많이 제작되는데 지금보다 더 활성화되면 좋겠다. 오페라 전문가들이 참여하지 못한 곳도 많지만 그런 부분도 더 나아질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오페라단, 민간 아닌 정부에서 주도적 운영해야

많은 오페라 선진국에서 정부가 직접 오페라단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을 본다면 민간 오페라단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한국 오페라계의 현실은 기형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방송이나 영화 같은 대중문화 예술은 재정적으로 자생 능력이 있는 반면, 오페라를 비롯한 순수 문화 예술은 상업성이 없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관리하는 것은 필연적인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 살 깎아먹기’ 식으로 운영되는 대부분의 민간 오페라단들은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페라 공연 자체에 대한 수요가 여전히 부족하다 보니 심지어 오페라 가수가 직접 돈을 내고 공연에 참여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 단장은 “내년이면 한국에 오페라가 들어온 지 70주년이 된다. 하지만 오페라 하는 사람 치고 70년을 거치면서 돈을 벌었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전부 빚에 시달리며 과로사 등으로 허망하게 생을 마감하는 분이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정부의 지원 역시 탁상공론식 처방이 대부분이라는 게 이 단장의 생각이다. 그는 “문화는 특수한 영역이다. 모르면 할 수 없다. 문화체육관광부 내에 전공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비율을 늘려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온다”고 조언했다.

지난 10일에 한국의 제19대 대통령으로 문재인이 최종 당선됐다. 이 단장은 이번 새 대통령에게 “역대 대통령들을 보면 항상 문화 행사에 와서 얼굴만 비추고 문화에 관심 있는 척을 한다. 문화계 현실을 파악하고 이념에 관계없이 일관성 있는 정책을 펼치면 좋겠다”고 마지막 바람을 전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