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박선미 기자 = 삼성전자가 27일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백지화한 것은 대내외 환경에 따른 잇단 악재 때문이다.
총수 공백이 장기화된 데다 법적 애로 및 여론 악화 등 지주사 전환에 대한 방해물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이명진 삼성전자 IR전무는 이날 실적발표 후 이어진 콘퍼런스콜에서 "향후에도 삼성전자는 지주사 전환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29일 지주사 전환을 검토하겠다는 공식입장을 내놓은 지 5개월 만에 더 이상 추진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지주사 전환은 그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가장 합법적인 방법으로 꼽혀왔다.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회사를 인적 분할하면 의결권이 없던 자사주의 의결권이 부활하고, 이를 바탕으로 오너 등 특수관계인의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업경쟁력 강화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삼성전자의 최종결정이다. 되레 경영 역량을 분산시켜 사업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특히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삼성전자와 계열회사의 보유 지분 정리 등이 필요하다. 각 회사의 이사회 및 주주들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단독으로 추진하기 힘든 실정이다.
금산법과 보험법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지주회사로 전환할 경우, 삼성생명 등 금융계열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일부 또는 전량을 매각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주가가 불안해질 수 있다.
의사결정 주체가 없는 점도 한몫한다. 그룹을 없애고 계열사가 각자도생에 나선 상황인 만큼 지주사로 전환할 이유와 명분이 사라진 것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이 부회장은 구속된 상태고, 그룹을 지휘했던 미래전략실도 없어진 상황에서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것은 부담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 정국에서 상법개정안, 공정거래법개정안 등이 추진되는 것에 대한 부담도 컸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지주회사 전환에 따른 비용과 비판과 특혜 시비 등을 포괄적으로 검토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현재 사업구조가 글로벌 경쟁력을 꾀할 수 있는 최적의 상태라는 점도 이유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TV 등 세트 사업과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부품 사업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를 통해 경기가 하락해도 실적 변동성을 최소화할 수 있었고, 기술과 설비에 대한 과감한 선제 투자를 통해 안정적인 성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회사가 사업 구조적 측면의 경쟁력을 갖춘 상황에서 지주사로의 전환은 추가적인 경쟁력 제고에 기여하는 바가 별로 없었다"며 "삼성전자는 그동안 지주사 전환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고 설명했다.
대신 삼성전자는 시가 40조원을 웃도는 자사주 소각을 택했다. 이병태 교수는 "자사주 소각이 의결권은 없어도 전체 주식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오너 일가의 지분율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그동안 삼성전자가 일관되게 추진해온 이익의 주주 환원이란 방침과도 맞다. 이날 삼성전자 주가는 한때 222만6000원까지 올라 52주 신고가를 경신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