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석유선 기자 = 롯데그룹(회장 신동빈)이 지주회사 체제 구축을 위한 첫 시동을 걸었다.
롯데제과, 롯데쇼핑, 롯데칠성음료, 롯데푸드는 26일 각각 이사회를 열고 지주사 전환을 위한 기업분할과 분할합병을 결의했다. 향후 4개 회사를 투자부문과 사업부문으로 각각 분할하고, 그룹의 모태인 ‘롯데제과’를 중심으로 각 투자부문을 합병해 지주회사 ‘롯데지주 주식회사’가 된다.
앞서 지난 2015년부터 롯데는 지배구조 투명성 제고를 위한 순환출자 해소, 지주회사 체제 전환 등을 천명해왔다. 신 회장은 2015년 8월 “중장기적으로 그룹을 지주회사로 전환해 순환출자를 완전히 해소하겠다”고 공표했다. 이어 지난해 10월 경영혁신안을 통해 “최대한 가까운 시일 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 투명한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거듭 밝힌 바 있다.
이날 4개사 이사회 결의는 신 회장의 지배구조 개선약속을 이행한 것으로, 보다 투명하고 효과적으로 그룹을 운영해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다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고 롯데 측은 강조했다.
◆제과·쇼핑·칠성음료·푸드 4개사, 사업-투자회사로 분리…그룹 모태 ‘롯데제과’ 중심으로 합병
이날 이사회 결의 내용이 8월 31일 주총에서 확정되면, 롯데제과·롯데쇼핑·롯데칠성·롯데 푸드는 각각 인적분할을 통해 사업회사와 투자회사로 나뉜다. 인적분할은 기존회사 주주들이 지분율대로 신설법인(투자회사)의 주식을 나눠 갖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신동빈 회장은 현재 롯데제과 8.78%의 지분을 보유 중인데, 신설 투자회사에 대해서도 8.78%의 지분을 확보한다는 얘기다.
롯데제과는 그룹의 모태로서 투자부문이 존속법인이 되며, 나머지 3개사의 경우 사업부문이 존속법인이 된다. 다음 단계로 롯데제과의 투자부문이 나머지 3개사의 신설 투자부문을 흡수 합병해 ‘롯데지주 주식회사’가 출범하게 된다.
4개 회사 투자부문의 시가를 당장 산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합병 비율은 일단 관련법으로 정해진 방식에 따라 ‘본질가치’로 평가해 외부평가기관이 산정했다. 이 지주회사는 자회사 경영평가 및 업무지원, 브랜드 라이선스 관리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소재지는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롯데월드타워이며, 회사의 주요 인선작업은 추후 이뤄질 예정이다. 주총 승인을 전제로 합병 기일은 10월 1일이며, 이후 4개 사업회사는 변경상장, 재상장 심사 절차를 거쳐 10월 30일 유가증권시장에서 거래가 재개될 예정이다.
◆ 순환출자고리 상당수 해소, 경영투명성·조직효율성 강화 ‘기대’
SK증권의 분석에 따르면, 총수 일가들이 대부분 현물출자를 한다는 가정 아래 신생 롯데지주회사는 4개사의 지분을 20~50% 보유한 막강한 지주회사가 될 전망이다. 구체적 지분율 계산은 어려운 단계지만, 롯데지주에 대한 신 회장의 지분율도 현물출자와 신주인수 등을 거치며 현재 4개 회사에 대한 신 회장의 지분율보다 훨씬 높아질 전망이다. 현재 신 회장의 지분율은 △롯데제과 8.78% △롯데쇼핑 13.46% △롯데칠성 5.71% △롯데푸드 1.96% 수준이다. 여기에 계열사 우호 지분까지 더하면 신 회장의 한국 롯데 지배력은 더욱 탄탄해진다.
지주회사로 전환되면 복잡한 순환출자고리도 상당부분 해소될 수 있다. 기존 2015년 416개에 달했던 순환출자고리를 순차적으로 해소해 현재 67개까지 줄인 상태이며, 이번에 분할합병이 이뤄지면 순환출자고리는 18개로 줄어들게 된다.
실제 이날 이사회를 연 4개 롯데 계열사는 이 순환출자 고리에서 ‘핵심’이다. 예컨대 롯데쇼핑과 롯데제과는 각각 무려 63개, 54개의 순환출자 고리에 관여하고 있고, 이 가운데 50개를 공유하고 있다. 롯데칠성과 롯데푸드가 포함된 순환출자 고리도 각각 30개와 27개에 이른다.
하지만 이날 지주사 전환으로 순환출자고리가 대부분 끊어지면, 지배구조가 단순화해지고 경영투명성이 제고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각 부문별, 계열사별 책임경영체계도 견고히 될 것으로 롯데는 기대했다. 당초 신동빈 회장과 롯데는 지난 2015년 ‘형제의 난’으로 불리는 경영권 분쟁을 겪고, 지배구조 개선 전략의 핵심을 호텔롯데 상장을 구상했었다. 호텔롯데의 지배구조에서 일본계 주주 비율이 너무 높아 ‘일본 기업’ 논란이 불거지면서 계획했던 상장 계획은 지난해 6월 검찰의 롯데 경영 비리 수사가 전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사실상 무산됐다.
이에 새로운 대안으로서 우선 쇼핑·식품 계열사를 묶어 지주회사를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것만으로도 한국 롯데에 대한 일본계 주주의 영향력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호텔롯데도 신생 롯데지주 회사의 주요 주주가 되겠지만, 신 회장의 지분율에 미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꼬리표를 떼고 지주회사 체제를 완성하려면, 중장기적으로 결국 호텔롯데 역시 합병 또는 분할이 불가피하다는 게 증권업계 관측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벌써부터 호텔롯데와 롯데알미늄이 롯데지주와 합병하는 방안, 롯데지주의 주요 주주인 호텔롯데를 사업·투자회사로 쪼갠 뒤 상장하는 방안 등이 나오고 있다.